모두가 고통스럽다. 이유를 새삼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실직자들, 기업들, 월급장이들. 또 집주인과 세입자, 은행과 채무자들. 허리띠를 졸라매고 모두가 허덕거린다. 늘어나는 거리의 자동차와 붐비는 술집들이 다시 정신나간 현상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오히려 자포자기의 소비행태라는 분석도 나오는 판이다.그래서 더욱 매달리는 기대는 경제회복이다. 마치 고통의 터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술환자의 심정이다. 경제회복이라고 말할 때 은연중 갖는 생각들은 IMF체제이전의 풍족한 씀씀이와 한껏 여유를 부리던 생활들이다. 해외여행을 다시 갈수 있고 직장동료들과 더 끈끈하게 어울릴 수 있고 가족들과 외식나들이를 자주 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이는 소박하다.
그러나 IMF이전의 다른 단면들을 다시 보면 어떤가. 흥청거리던 룸살롱의 폭탄주 회식, 별따기 같던 주말골프 예약, 급행료와 뇌물과 떡값과 경쟁적 과소비, 그리고 한탕주의와 물신주의. 모두가 미쳐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그때는 정말 「좋았던 그 시절」인가.
「회복」은 마치 이 시대의 목표인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정신의 회복이 간과돼 있음을 한번 깨달아 보자. 김진현(金鎭炫) 서울시립대 총장은 얼마전 한국일보 기고에서 『국난극복에는 기능적 제도적 접근 못지 않게 도덕적 접근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총장의 글은 지도층의 정신개혁을 주문한 것이었지만 경제난극복을 얘기할 때 우리 모두가 빠트리고 있었던 화두가 아닐 수 없다. 회복이 예전의 「정신공황」상태의 회복까지 포함하는 것일때 우리는 희망이 없다. 흔히 이 위기를 탈출하고 나면 격심한 빈부격차라는 새로운 사회문제를 안게 될 것이라는 걱정을 한다.
그러나 이젠 냉정해 볼 필요가 있다. 누릴 수 없는 일은 생각도 말아야 하고 있는 빈부격차는 당연시 할줄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 중간계층일수록 더 그래야 한다. 이 고통의 기간중에 도덕적 회복이 없다면 어느 소설가의 말대로 『이번의 위기가 극복된다 해도 행복해 지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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