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춘향가 16일 국립국악원서/70년대후반 목 꺾인후엔 제자 키우는데 전념 위엄있고 서슬퍼런 소리 소리꾼들도 두려워한다는데…오늘날 판소리는 이른바 보성소리가 대세다. 명창 정응민(1896∼1963)이 전남 보성에서 농사짓고 살면서 가르친 이 소리는 옛날 임금 앞에서 소리하던 어전 광대들이 만든 소리라 점잖고 격조가 높다. 슬픈데도 꿋꿋이 부르고 해학적인 대목도 너무 되바라지지 않게, 기뻐도 너무 표나지 않게 절도있게 부른다.
보성소리의 으뜸 가는 명창 성우향(63)씨가 오랜만에 무대에 선다. 16일 오후3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리는 판소리 완창무대에서 3시간동안 춘향가를 한다. 본래 6시간 반 걸리는 소리인데 앞의 절반만 한다.
『가을에 공연하려고 준비하던 참에 국립국악원이 초청해줘 용기를 냈지. 개구리가 잠이 들어 덜 깼을지 몰라. 무대는 뜨막했으니까. 그래도 나이 더 들기 전에 해야겠다 싶어 그냥 밀고 나가는 거지』
소릿속을 아는 이들은 그의 소리를 최고로 친다. 5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의 명창이라면 박녹주 박초월 김소희등과 함께 그가 꼽혔다. 음반 취입, 공연, 방송 출연도 많았다. 그러다가 70년대 후반 목이 꺾인 뒤로 제자 키우는 데 전념, 무대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94년 소리인생 55주년 기념공연이 끝이었다. 다행히 최근 2∼3년새 목이 아주 좋아졌다고 한다. 그의 절창을 기억하는 귀명창들은 이번 무대를 조바심치며 기다리고 있다.
『내가 다른 건 없어도 뼈다구는 있지. 목은 어떻든 간에 옛날 소리 흉내는 내니까. 살은 다 빠져나갔어도 뼈는 있으니 크게 실망하시지는 않을 겝니다』
그는 정응민 밑에서 보성소리를 가장 많이 배웠고 실제로 그 소리에 가장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소리는 양념을 많이 친 요새 소리가 아니고 담박한 고제(古制)다. 다른 소리꾼들이 두려워할 만큼 위엄 있고 서슬이 퍼런 소리이지만 귀명창들은 그걸 듣고 몸살이 난다고들 한다.
공연을 앞두고 그는 작고한 명고수 김명환을 그리워하고 있다. 「내 북에 앵길 소리가 없어요」라는 김명환의 자서전 제목에서 짐작되듯 그의 북솜씨는 따를 자가 없었다. 특히 보성소리에 달통해서 성우향의 북가락을 도맡아 쳐줬다. 86년 춘향가 완창때 혼자서 6시간동안 북을 치고는 무릎이 아파서 일어나지 못하고 부축받아 나간 일화가 있다.
『그때 그렇게 독판으로 끝내고 병이 안 나아서 돌아가셨지. 저승에 전화라도 걸고 싶소.「내가 이만저만 해서 소리를 하니 나와서 북 좀 쳐주시오」하고』 이번 고수는 김청만, 김성곤 두 명이다. (02)580-3333 <오미환 기자>오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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