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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피혁 대표이사 김혜경(女性의 새 길을 연다:10·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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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피혁 대표이사 김혜경(女性의 새 길을 연다:10·끝)

입력
1998.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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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죽의류 외길 고졸의 ‘똑순이사장’/76년 가죽과 인연맺은후 개발·생산·영업 섭렵/93년 창업… 매년 30∼50% 고성장 지난해 120억원 매출/“배포가 아니라 신용과 성실로 바이어 사로잡았죠”□김사장 성공비결

1.디자인다양화소액거래도 기꺼이

2.고급품전략 ‘프리미엄 재킷’ 큰 호응

3.주도면밀한 중국투자 2년만에 비용회수

창업 4년만에 1년 매출액 120억원(97년). (주)이레피혁 대표이사 김혜경(金蕙卿·40)씨는 「사양산업」이라는 피혁의류업계에서 매년 매출액이 30∼50%씩 성장하는 알짜기업을 키워낸 「고졸 똑순이여사장」이다. 그것도 100% 수출로 벌어들였다. 김씨는 지난 해 7월 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회장 장영신)가 주최한 「제2회 여성경제인의 날」행사에서 통상산업부 장관상을 받았다. 회사이름 이레는 성경에 나오는 말로 「하나님의 뜻대로」라는 뜻. 신앙의 힘과 성실성으로 김씨는 오늘의 성공을 일구었다.

김씨는 76년 고교졸업후 두번째 회사인 (주)중외모피에서 가죽과 인연을 맺고 20년간 오롯이 이 분야만 파왔다. 77년 무역회사 남양어망에서 2년간 경리업무를 본 것이 유일한 외도. 이때 신용장 개설등 수출입 은행업무를 익힌 것이 나중에 창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후 (주)삼선양행과 일본계 피혁 바이어업체 「WACO」서울지사에서 피혁의류 개발 생산 영업 수출선적등 모든 분야를 섭렵했다. 『중소기업 사장은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든 분야를 꿰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김씨는 영업이 주전공이다. 89년부터는 형부가 운영하는 (주)조은피혁에서 부사장으로 본격 경영수업을 시작했고 93년 9월 독립, 창업했다. 창업 자본금은 퇴직금 및 저축액 7,000여만원에 친척에게서 빌린 돈을 합한 1억원. 당장 수출물량을 대기 위해 필요한 원자재는 신용장과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린 3억원으로 구입했다. 창업 첫 해 매출액이 20억원이었다.

김씨의 창업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주)조은피혁때부터 인연을 맺은 미국 바이어가 밀어주었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바이어였지만 어려운 자수기술이 필요한 옷을 주문해도 못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그대로 맞춰주었다』 「입속의 혀」처럼 주문에 따르는 김씨가 독립하자 이 바이어는 거래처를 김씨회사로 옮겼다. 이레피혁의 시장은 미국 캐나다 유럽지역의 6곳으로 이중 미국 바이어가 매출액의 90%를 주문한다.

영업이 전문이라지만 김씨는 바이어한테 술대접을 해본 적이 없다. 바이어 접대는 점심에 하고 거래처 사장들과는 3년전부터 익힌 골프를 함께 치는 정도이다. 뇌물을 준 적도 없다. 대신 바이어와 의사소통을 잘 하기 위해 아무리 바쁠 때도 10여년간 영어회화학원을 빼먹지 않았다. 무엇보다 디자인을 다양화하고 다품종 소액 거래도 꺼리지 않는 것이 바이어를 사로잡은 비결이다.

씨의 주요 수출품은 상표나 로고를 새긴 「프리미엄 재킷」. 미키마우스 루니툰스 베티붑등 유명 만화 캐릭터나 NBA팀 플래닛할리우드 버드와이저등 상표를 등에 새긴 가죽점퍼다. 고급품 전략이 두번째 성공비결이다. 김씨는 『가죽에 수를 놓으려면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데 우리는 중국 인도네시아산 일반 가죽재킷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고 말한다. 이 프리미엄재킷은 미국에서 「Excelled」라는 브랜드로 한 벌에 220∼250달러로 판매되고 있다.

해외에 진출, 생산가를 낮추고 투자액을 일찌감치 회수한 것도 성공비결. 96년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시에 직원 364명, 1년 18만벌 생산규모의 공장을 세웠다. 본사 파견인력은 제품개발자 4명과 공장장뿐이다. 국내 본사에는 공장이 없고 개발관리인력 20명이 전부다. 본사에서 원자재비용을 제공할 때 로열티를 받는 방식으로 투자액 15만달러를 2년만에 전액 회수해 지금은 기술만 제공하고 하청주문을 한다. 『투자액만 날리고 중국에서 손떼는 회사를 보고 창업후 2년간 면밀히 중국 투자방법을 연구했다』

83년 (주)삼선양행에서 만나 85년 결혼한 남편 우인기(禹人基·41)씨의 외조도 큰 도움이 된다. 자재관리에 밝은 남편은 현재 중국 공장장이다.

김씨가 가장 어렵게 여기는 일은 은행거래와 접대다. 『학연도 없고 여성이라 은행에서 확실한 담보 없이는 신용대출을 해주지 않았다』며 김씨도 『94년에는 자금 부족으로 사채를 끌어쓰기까지 했다』고 들려준다. 특히 사업할때는 전혀 불편없는 고졸이라는 학력이 은행 거래시에는 문제가 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래도 김씨는 『사업가에게는 사업가로서 능력이 중요할 뿐 학력은 중요치 않다』며 대신 학연 인맥 고향을 따지는 국내 풍토에 적응하는 자세는 사업가로서 필요하다고 귀띔한다. 3개월이면 전액 현금이 돌아오는 수출업체라는 점이 알려져 요즘은 IMF상황에도 신용장대출을 쉽게 받을 정도로 탄탄한 신용을 쌓았다. 김사장은 『90년대 들어 수출입시 세관 잡화검사등이 폐지되는등 각종 규제와 절차가 많이 사라져 뒷돈을 주는 관행도 사라지고 있다』며 「배포」가 아니라 「성실성」을 갖춘 여성사업가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한다.<노향란 기자>

◇약력

58년 인천 출생

76년 인천 인일여고 졸

79년 (주)중외모피 입사

83년 (주)삼선양행 입사

86년 와코 트레이딩 서울지사 입사

89년 (주)조은피혁 입사(부사장)

93년 (주)이레피혁 창업

96년 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 회원

97년 제2회 여성경제인의 날 통상산업부 장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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