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길 붉은 절벽에 둘러싸여 무학대사가 점찍은 ‘第一吉地’/인근엔 산성·발전소 등 볼거리극락정토는 벼랑 위에 있었다. 발아래 운무(雲霧)가 출렁이고 극락전은 희뿌연 안개에 잠겨 아득하다. 맑은 풍경(風磬)과 낭랑한 독경소리가 천상과 속세를 이어준다. 전북 무주 적상산(赤裳山) 안국사(安國寺·주지 이원행·李圓行). 해발 1,000m 위에 칼바위들이 주위를 병풍처럼 두른 그 안에는 신비롭고 그윽한 또 하나의 세상이 있다.
적상산은 사면이 붉은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이고 단풍이 물들면 여인의 치마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붙었다. 일찍이 무학대사가 「국중제일길지(國中第一吉地)」로 점찍을 만큼 경관이 뛰어나고 요새로서의 요건도 갖추었다. 임진왜란 직후에는 묘향산의 실록을 옮겨 보관했던 5대사고(史庫) 중의 하나였다.
고려 충렬왕 3년(1277년) 월인(月印)화상이 창건한 안국사는 본래 적상호(무주 양수발전소 상부댐)자리에 있다가 92년 댐이 건설되면서 현재 호국사터로 옮겼다. 정상에서 이어지는 주능선에서 동쪽으로 살짝 내려앉은 새 절은 인간세상을 굽어보는 품새가 의연하고 시원스럽다.
최영(崔瑩·1316∼1388)장군이 쌓았다는 적상산성(사적 제146호)성벽을 따라 안렴대(按廉臺)까지 가는 길(600m)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매력적인 산책로이다. 구름을 뚫고 올라온 향적봉 삼도봉 등을 눈높이에 두고 아래서 밀려오는 안개를 밟는 기분은 하늘을 걷는 듯하다. 아래쪽부터 피어 올라오는 철쭉군락도 볼만하다. 이달 중순이 절정이다. 천길 낭떠러지 위에 걸쳐 있는 안렴대는 보기드문 천혜의 요새. 얼마 전 설치한 계단을 타고 어렵게 내려가는 길이 아찔하다. 고려때 거란이 침입하자 삼도(三道)안렴사가 병사들을 주둔시킨 진지였고 병자호란때는 실록을 보관했던 임시 사고였다.
적상호와 산 아래 무주호는 산을 뚫어 직경 5.5m관으로 연결한 양수발전댐. 95년부터 심야의 여유전력을 이용해 상부댐에 물을 퍼올린 후 낮에 내려보내면서 60만㎾의 전력을 생산해내고 있다. 땅속에 건설된 발전소시설은 폭 21m, 높이 49m, 길이 98m로 30평형 아파트 320가구가 들어갈 만한 규모이다. 무주호 건너편 전력홍보관도 놓치기 아까운 곳. 전기가 만들어지는 원리와 과정을 모형으로 쉽게 설명해주는 전기박물관이다.
주변 얘깃거리도 많다. 산성 서문아래 거대한 바위가 두 부분으로 쪼개진 장도(將刀)바위는 얽힌 전설도 흥미롭다. 최영장군이 산성으로 오르던 길 앞을 바위가 가로막자 칼로 내리쳐 길을 냈다는 것이다. 또 소설가 은희경씨가 96년 발표한 소설 「그녀의 세번째 남자」는 은씨가 실제로 여기서 4개월여 동안 기거하며 실제인물과 소재를 배경으로 쓴 작품. 남자에게 버림받고 찾아간 절(소설에서는 영추사)에서 깨달음을 얻고 돌아가는 내용이다.
뱃속 깊숙히 웅장한 기계음을 삼킨 적상산. 그러나 절벽 위 산머리에서는 오늘도 중생구제와 호국의지를 담은 해탈음이 연녹색 살진 숲을 타고 멀리 멀리 퍼지고 있다.<무주=최진환 기자>무주=최진환>
◎가는길/영동·옥천·황간 IC로 나와 무주읍에서 리조트쪽으로
열차로는 경부선 영동역이나 대전역을, 버스로는 영동 대전 금산에서 내려 시외버스를 타고 무주터미널이나 구천동터미널을 이용해야 한다.
승용차로는 경부고속도로에서 영동IC(상·하행) 옥천IC(상행) 황간IC(하행)에서 빠져나온다. 무주읍에서 727번 지방도를 따라 무주리조트쪽으로 5분쯤 가다보면 오른편으로 안국사로 올라가는 포장도로가 있다. 안국사 앞까지 차가 다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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