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4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회견을 통해 『전임 대통령들의 편안한 사생활을 위협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것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김대통령의 이 발언으로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에 대한 사후처리 문제가 가닥이 잡히게 됐다. 적어도 사법처리 대상이 되지 않게 된 것은 확실한 것 같고 잘 하면 청문회에도 나갈 필요가 없어지는게 아닌가 싶다.이렇게 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중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4.19로 실각당해 망명지에서 죽음을 맞았고 장면(張勉) 총리가 쿠테타를 당했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시해를 당했고,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둘 다 감옥살이를 했으니 편안한 사생활을 보장받은 김 전 대통령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전임 대통령이 될 수 밖에 없다.
나라가 이 꼴이 됐는데 바로 전임 대통령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국민감정으로 볼 때는 용인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의 국민정서로 본다면 김영삼 대통령은 가장 불행한 대통령이 되는 것이 오히려 합당한 일인지 모른다.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지금의 경제적 비극을 초래한 장본인이 퇴임후 편안함과 행복을 보장받는다는 것이 순리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국민정서라는 것이 너무 변덕이 심해서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 또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중 수없는 반대자를 투옥 감금하고 많은 욕을 먹었지만 지금은 그에 대한 향수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가 됐다. 국민적 지탄을 받았던 이승만 대통령도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라는 국가체제의 설립자로서 건국의 공로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새로와지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 감정은 변하고 이성적인 평가가 힘을 얻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사와 대화하는 자세』로 외로운 결단을 내린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박정희 대통령도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며 모든 것을 후세의 역사적 평가에 맡기는 자세로 소신껏 일을 했다. 말하는 것은 두 사람이 같았지만 실제 행동은 달랐다. 한 사람은 국민의사를 무시했고 한 사람은 여론과 인기에 지나치리만큼 집착했다.
한국외대 안병만(安秉萬) 교수가 2일 행정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역대 대통령 리더십 평가」는 재미있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윤보선(尹譜善) 최규하(崔圭夏)를 제외한 우리나라 역대 6명의 통치자들에 대해 이대통령은 『부패했으나 세련된 대통령』, 장총리는 『우유부단하고 미숙한 통치자』, 박대통령은 『근면하고 패기있으며 명석함을 갖춘 지도자』, 전대통령은 『패기는 있으나 거만한 대통령』, 노대통령은 『우유부단하고 음흉하며 부패한 지도자』, 김 전대통령은 『미숙하면서 거만한 통치자』라는 평가다.
국민이 바라는 대통령은 『깨끗하고 근면하며 패기있고 명석한』 대통령이라는 것을 이 논문은 말해주고 있다. 상위그룹의 지도자들은 용기와 패기, 명석함과 결단력에서 점수를 얻고 있고 하위 그룹은 부패와 우유부단함에서 공통점을 보였다. 인기와 여론에 신경을 쓰고 항상 선거를 의식했던 김영삼 노태우 장면은 하위 그룹이다. 이 평가를 보면 누가 행복하고 누가 불행한 대통령인지 구분이 어렵다. 김영삼 대통령은 정말 행복한 대통령인가. 박정희 대통령은 과연 불행한 대통령인가.
우리나라 역대 지도자 대열에 일곱번째로 합류하게 되는 김대중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일까. 재임중의 평가와 역사속의 평가가 어떻게 다를지, 퇴임 후의 행 불행이 어떻게 엇갈릴지 궁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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