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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號 ‘사공’이 너무많다(국난을 넘자: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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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號 ‘사공’이 너무많다(국난을 넘자:25)

입력
1998.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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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먼저” “금융먼저” 구조조정 서로 딴목소리/부채축소도 오락가락 和音맞출 조정役 시급『답답합니다. 최고 정책당국자란 사람들이 서로 다른 말이나 하고, 어제와 오늘 얘기가 다르고, 모든 현안이 다 최우선순위라고 하지를 않나,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시중은행 고위간부 P씨는 갈수록 오리무중인 정부내 「성층권」 기류에 강한 불만을 털어 놓았다.

위기수습과 재도약의 사명을 띠고 새 정부가 출범한지도 두달. 환란(換亂)고비는 넘겼지만 시대적 명제인 경제구조조정은 아직 첫 단추도 끼우지 못했다.

개혁의 수술대위에 오른 재벌과 금융기관의 안이함 탓도 있지만 그보다 구조조정을 집도할 정부안에서 흘러나오는 파열음과 과욕의 목소리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불쑥불쑥 돌출하는 설익은 정책, 정제되지 않은 대책은 그 자체가 혼란의 원인이자 개혁의 걸림돌이다. 소위 「구조조정 우선순위논쟁」이 단적인 예다.

금융기관 구조조정은 정부(금융감독위원회)가 맡고 기업은 금융을 통해 개혁한다는 것이 알려진 기본전략.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은행을 통한 기업구조조정은 관치금융을 낳을 수 있다』며 제동을 걸었고 금감위는 다시 이를 반박했다. 금융과 실물이 동전의 양면이고 우선순위를 따진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이지만 「기업개혁부터」 「금융개혁 먼저」 「동시 구조조정」등과 같은 닭과 달걀의 논쟁은 시간만 소모한 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협조융자도 재경부는 대기업 연쇄도산차단을 위해 은행이 나서주기를 내심 바라지만 공정위는 이를 담합으로 규제할 태세다. 대기업 부채비율 역시 당초 『내년말까지 200%로 낮춰야 한다』→『강제할 방법이 없다. 업종별로 차등을 두겠다』→『당초 계획을 관철한다』는 식으로 오락가락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어제는 실업방지, 오늘은 금리인하, 내일은 구조조정식으로 정책 최우선순위가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정책은 선택이고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는 미루거나 포기하는게 상식이거늘 「보이는 토끼」는 다 잡겠다고 덤비는 정부는 아직도 「정부불패(不敗)」신화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견은 있을 수 있고 논쟁은 오히려 건설적이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현안마다 「모두가 당국」이고 그래서 「정부는 없고 부처만 있는」 난맥상이다.

힘을 잃은 부처는 옛 파워의 미몽에 젖어 있고 힘을 얻은 부처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가속페달만 밟아대고 있다. 경제비상시국에서 책임있는 당국이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태다.

문제는 정부구조가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선장 없이 사공 뿐인 함선」처럼 되어있다는 데 있다. 조정자가 부처단위의 편협된 각론만 쏟아내 결국 개혁이 밥그릇싸움, 공명심경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경제조정회의를 토론을 통한 정책도출의 장으로 만든다는 것은 좋은 발상이지만 현실적으로 대통령 앞에서 장관들의 난상토론을 기대할 수는 없다. 통치권자에게 경제정책조율까지 맡긴다는 것 역시 무리다. 뒤늦게 대통령 직속 구조개혁기획단이 만들어진다고는 하나 제한된 부처가 참여하는 태크스포스로 난마처럼 얽힌 경제현안들을 매끄럽게 조율하기엔 역부족이다.

한 금융계인사는 『지금처럼 중구난방식 설전만 반복된다면 외국투자자들에겐 한국정부의 개혁의지 부재로밖에 비칠 수 없다』며 『재경부든, 기획예산위원회든, 청와대든 상시적 조정권한이 부여된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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