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일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과 신체적 자유를 되새기는 법의 날이다. 그런데 인권피해의 상징인 분이 인권보장을 떠맡을 권좌에 올랐으니 암울했던 과거의 청산은 그분께 맡겨도 될 것 같다.이제는 이시대의 화두가 되어버린 규제혁파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는 흔히 규제완화와 철폐를 주장한다. 그런데 경제등 사회발전의 장애가 된다는 규제는 왜 쉽게 혁파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 점에서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규제란 나무가지처럼 잘라낼 수 있는게 아니다. 이미 나무 몸통과 뿌리에 박혔거나 나무 자체가 되어버렸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규제혁파란 정치 사회 구조와 법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손댈 일이 아니다.
규제의 골간인 법규는 시행령 시행규칙과 자치단체의 조례등과 연결되며 횡적으로는 여러 관련법의 적용을 받으므로 이중 단 한개라도 합리성을 결여했을 때에는 바로 혁파대상인 규제가 될 수 있다.
3월 현재 우리나라에는 법률,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3,453개와 자치법규등 수만개의 법규가 존재한다. 이중에는 바퀴가 빠진 승용차, 소리안나는 TV같은 리콜대상이 되어야 할 법규가 적지 않지만 법규는 공산품과 달라 쉽게 반품되지 않는다. 유능한 율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엘리트 집단이 만든 법인데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경제단체나 시민단체의 주장을 입법설계 도면에 올려놓고 보면 대부분 사실로 나타난다. 법의 결함은 입법자 스스로도 발견하지 못한채 공포·시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새로운 법 제정은 또다른 규제를 함께 만드는 것이 된다.
실감나는 사례가 있다. 95년말 만든 「중소기업구조개선법(약칭)」에는 전국 재래시장을 재개발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정작 이때 준용해야 할 도시재개발법에는 시장재개발이라는 용어조차 없다. 1년 뒤 개정했지만 막강한 도시재개발법을 준용한다는 규정 때문에 역시 쓸모없는 법이 되어버렸다. 이런데도 정부기관과 자치단체는 하위법을 만들고 시행중이다. 관련법이 없어 위성방송을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비한 법 때문에 빚어지는 행정의 갈등과 국가적 손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필자는 규제혁파를 「입법개혁」으로 개념을 바꾸고 총체적인 입법개혁을 차분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천방법으로는 우선 독일식 입법제도로 전환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학회가 연구대상으로 삼은 독일의 경우 법안을 작성하는 공무원은 법령심사기준표(일명 청색리스트)에 따라 합리성 경제성 효율성등 20여 항목을 점검하여 80점이상이 되면 언어학회에 보내 「쉬운 용어로 되었는가」를 심사받는다. 또 회원이 2,000명인 입법학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다음 절차를 진행하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입법갈등은 원천적으로 없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여 총체적인 입법정비에 착수할 때이다.
둘째 의회 비례대표제의 효율적 운영이다. 정치자금 창구로 활용하기 보다는 입법 또는 관련분야 전문가로 충원해 입법활동의 보루역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당장 6월 선거부터 각 정당이 입법개혁 의지를 갖고 비례대표 명단을 제시한다면 국민적 공감을 얻는 수준 높은 서비스가 되고 지역구 의원의 후보 공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법의 날을 맞아 인권을 외친 함성이 국력회복을 위한 입법개혁의 소리로 번져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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