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東京)생명보험이 최근 「이웃집의 무엇이 가장 알고 싶으냐」는 재미있는 설문조사를 했다. 1위를 차지한 것은 뜻밖에도 응답자의 11.9%가 꼽은 「저축액수와 저축방법」이었다. 자녀들의 교육방법등 관심을 끌만한 것이 많은데 이웃집은 어떠한 방법으로 얼마를 저축하느냐가 1위라는 것은 일본사람들이 그만큼 저축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일본사람들은 지진과 태풍이 많은 자연환경 속에서 사는 두려움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저축을 많이 한다고 일컬어져 왔다. 미국(3.4%)의 4배가 넘는 13.8%란 저축률이 이를 입증한다. 요즘처럼 종신고용제가 흔들리고 경기마저 나빠 실업률이 3.9%로 전후 최악인 상황에선 더더욱 저축에 매달린다.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것은 돈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일본은 최장수국이다. 초고령화 사회인데도 선진국 답지않게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길어진 노후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수 없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좁은 집에서 사는 것을 감수한다. 오히려 작은 집에서 검소하게 먹고 사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일본이 세계 제일의 무역흑자 대국임을 감안 하면 풍요속의 빈곤이라고나 할까.
주한일본대사관에 근무하는 한 외교관은 집에 탁자를 들여 놓고 싶어 놓을 자리를 찾아 보았다고 한다. 아무리 궁리해도 공간을 마련할 수 없어 결국 이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그만큼 일본의 주택이 「비둘기집」이란 평판처럼 좁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말해준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 보면 일본사람들은 낭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 자랑스럽게 내비치고 있다.
일본정부는 지난주 특별감세 4조엔을 골자로 한 16조6,000억엔(166조원)에 달하는 종합경기부양대책을 발표했다. 현재 세계의 관심은 이같은 대책으로 일본 국내의 소비가 진작돼 경기회복이 될 것이냐에 쏠려 있다. 이번 대책이 아시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일본 혼자만 살아남으려 모른체한다는 미국등의 비난과 압력에 못이겨 마지못해 마련한 것이라 더욱 그러하다.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올리는등 국가재정 재건에 나섰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일본총리는 부양책 마련을 아주 꺼렸었다. 이것은 그동안의 재정재건계획과 상치되는 것인데다 감세를 하더라도 국민들이 세금을 덜 내게된 돈을 가지고 백화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은행으로 달려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내수진작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도쿄생명보험의 설문조사결과는 하시모토 총리의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자 경기부양책 발표 후 일본을 지켜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적당한 소비는 경기를 부양, 일자리도 생겨 실업자가 줄어든다는 것이 경제논리인데 일본국민들의 생각은 다른듯 하다. 어려움을 국가에 의지해 해결하기 보다는 먼저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하려 한다. 즉 「자기자신은 자기가 지킨다」는 강한 의식이 높은 저축률과 검소함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일본국민들의 태도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국가에 너무 의지하는 것 같다. IMF시대가 됐다고 허리띠를 졸라매던 결심이 무너진 것이 좋은 예다. 길에는 자동차가 넘쳐 흐르고 양담배와 양주 수입이 다시 급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조금만 어려우면 『정부는 무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한다. 이처럼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국난극복을 국가의 몫으로만 돌리는 우리들의 자세는 더욱 문제가 많다. IMF시대라는 국난은 국가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국민의 노력이 뒷받침 되지않으면 헤쳐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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