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부 출범후 구조개혁의 추진이 지지부진하다는 소리가 국내외에서 들리고 있다. 2개월이란 시간은 아직도 이 정부의 개혁성과에 대해 무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국내외에서 우려를 표명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바로 개혁을 추진해 나가는데 있어서 뚜렷한 비전이 보이지 않고 또한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의 의사결정구조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경제가 맞고있는 비상(非常)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반드시 경제개혁에 성공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몇가지 충족되어야 할 기본요건이 있다고 생각된다.첫째는 개혁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경제제도와 질서에 대한 비전이다. 개혁은 과거의 것을 부수는 것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것을 건설하는 일이다. 금융과 재벌구조개혁을 하겠다면 그 개혁을 통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금융제도와 재벌구조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가령 5년후의 우리 경제에서 은행과 재벌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며 정부와 은행, 기업의 관계, 그리고 재벌과 은행의 지배구조는 어떻게 되어야 하며 외국자본의 역할은 어떻게 기대하고 있다든가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서야 한다.
둘째는 이러한 비전이 대통령으로부터 실제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실무자들 사이에 충분히 교감이 되어 공유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명확한 비전과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것이 함께 일하는 관료와 국민들에게 정확히 전달되고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개혁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눈치만 보는 정책, 자꾸 딴소리가 개입되는 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
셋째는 이러한 개혁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해 나가는데 있어 주체가 될 조직의 분명한 역할 설정이다. 누가 혹은 어떤 부처가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자리매김이 없으면 기관 이기주의에 의한 각종 땜질식 개혁처방만 남발될 것이다.
넷째는 이러한 바탕 위에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개혁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다. 가령 몇리를 가면 계곡이 있으니 이는 어떻게 건너고 그를 지나 낭떠러지가 있는데 이는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세부적인 지도를 그려 이를 공개하고 첫발짝부터 그 지도에 그려진대로 옮기는 것이다. 그래야 신뢰성 있는 개혁의지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개혁은 몇개의 「조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일관성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며 이에 대한 국민의 신뢰 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기업들로 하여금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내리라고 하는 말만으로 이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 스스로 재무구조 변화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확실한 판단이 서도록 해주어야만 이에 대한 노력이 구체화할 것이다. 또한 재무구조개선을 위해서는 금융시장구조가 바뀌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금융구조 개편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며 이것이 모두 지도에 그려져 있어야 한다.
현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개혁이 부진한 것은 바로 이러한 요건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새정부는 과거정부의 실책을 추궁하는데 보다는 바로 이러한 요건을 갖추는 일에 우선 과제를 두어야 할 것이다. 지난 2개월동안의 정부의 성적에 대해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평가를 유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새정부가 이상과 같은 요건들을 충족시켜 나가게 되리라는 기대를 아직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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