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차원 방송 마스터플랜 세워라/국민회의 제시 시안은 정치적 타협성격 강해/해외자본·재벌·언론의 방송참여도 어정쩡 대처/공공·자율성 강조 시청자 권익보호는 진일보방송정책을 총괄할 새로운 방송법제정작업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야는 이른 시일 내에 국회에서 법을 확정키로 하고 논의를 거듭하고 있으나 이견이 심해 입법과정은 원활치 않을 전망이다. 국민회의가 최근 내놓은 통합방송법시안을 중심으로 새방송법의 제정방향을 모색한다.
국민회의가 제시한 통합방송법안 시안은 그 목적과 방향에서 현행 방송법보다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시안은 방송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시청자의 권익보호를 강조함으로써 전파의 주인이 시청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과거 공보처의 실질적 하부 기구로 정치권의 입김을 크게 받아 온 통합방송위원회의 위상을 절대적으로 강화한 것은 그 내용이야 어쨌든 과거의 왜곡된 방송정책을 올바로 펴보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또 방송을 지상파, 종합유선방송, 위성방송으로 새롭게 구분하고 이들 방송의 프로그램 공급업체(PP)를 방송채널사용업자로 규정, 융통성을 부여한 것은 변화하는 방송여건에 적응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회의의 시안이 과거와 다를 바 없이 정치적 타협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거세다. 정치적 관점에서 과거 방송법의 최대 피해자였던 여당은 방송에 대한 철학과 거시적 안목보다는 무조건 과거와 반대되고 현실적 이익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시안을 마련한 인상이 짙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올바른 방송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방송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마스터플랜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가의 거시적 계획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획득한 후 그 목적과 방향에 맞게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방송법은 방송에 대한 국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방송법이 미래의 방송체제를 예측, 대비함으로써 시청자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고, 방송위가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시안이 많은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윤태진 단국대교수는 시안이 방송의 범주를 지상파와 종합유선, 위성방송등으로만 구분한 것은 통신과 방송이 융합해가고 있는 세계적 추세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송개방시대를 맞아 첨예한 논쟁거리로 부각된 해외자본과 재벌, 언론의 방송참여에 대해서도 시안은 어정쩡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어 「개방파」와 「신중파」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박명진 서울대교수는 시안이 위성송출사업분야에 외국자본등의 참여를 금지한 것에 대해 『규제보다는 독과점 금지등 투명한 경쟁체제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이번 시안이 통합방송위원회의 구성방법으로 정부·여당이 다수를 점할 수 있게 한 것에 대해 유의선 이화여대교수는 『방송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방송법은 정치권력의 필요에 따라 파행적으로 변천해 온 것이 사실이다. 5·16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만든 방송법(63년 12월)은 80년 언론기본법에 의해 사라졌다. 87년 6·29선언에 의해 다시 제정된 방송법(87년 12월)이 현 방송법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은 언론기본법을 바탕으로 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90년 7월 새 방송법이 날치기로 통과돼 오늘에 이르렀다. 이후 방송법은 김영삼정부가 들어선 후인 95년과 96년 개정될 뻔 했지만 정치적 이해가 맞지 않아 무산됐다.<김철훈 기자>김철훈>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