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외국자본에 매각땐 요금인상·기술위축 초래 통일이후도 대비 신중해야”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중요 정책이 외국자본 유입을 전제로 결정되는 듯한 인상이 짙다. 우리나라 경제가 세계경제의 흐름속에서 성장하려면 외국자본이 자유롭게 더 많이 들어오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모든 분야에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어 안타깝다. 특히 최근에는 「발전소를 외국자본에 매각한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어 우려된다.
전력산업이 관주도의 독점사업이 되면서 여러가지 문제가 생긴 것을 전면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산업의 쌀」로 일컬어지는 국가 기간산업을 외국 자본이 좌지우지하도록 만들기에는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실정과 잠재력이 믿을만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우리 전력산업은 한국전쟁 중 발전량이 고작 8만1,000㎾인 화천발전소를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피를 흘렸을 만큼 열악한 실정에서 출발했다. 화천발전소 발전량이 전국 전력생산의 절반에 이르면 당시와 비교해 지금은 총설비량 4,130만8,000㎾(510배)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특히 원자력설비만으로도 1,000만㎾에 육박한다. 매판자본, 공해산업이라는 갖가지 비난속에서도 원자력발전은 일관된 정책에 힘입어 기술자립도는 95% 수준이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북한 금호지구에 건설할 기준형으로 한국표준형원전을 채택함으로써 그 기술수준을 객관적으로 입증받았다.
전력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은 양질의 전력을 싼값에 공급한다는 데 초점이 있다. 지난 10년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이를 충족시켜 온 것이 한국의 전력사업이다. 유일하다는 의미는 일본은 싼값이 못되고 대만은 10년째 전력공급제한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97년말 환율이 달러당 1,415원일때 ㎾당 전력요금을 원화기준으로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66.25원일때 일본은 무려 204.62원이나 된다. 대만(95.16) 미국(97.65) 영국(136.75)보다도 싸다.
만일 외국자본의 개입으로 더 싼 값에 더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면 발전소 매각도 찬성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은 그럴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전력산업으로는 유일하게 외국자본이 들어온 한화에너지(전 경인에너지)는 그 발전설비를 매각공고중에 있다. 한국전력은 투자보수율이 8%에도 못미치면서 한화에너지에는 13%나 보장해주었는데도 그렇다. 실제로 민간에서 참여한 발전산업은 한결같이 적자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자본을 유입시키려면 적자가 아닌 흑자 발전산업을 내주어야 하는데 공기업의 흑자부분만을 외국에 떼어주면 나머지 적자부분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남을 뿐이다. 외국자본이 삼천포, 보령같은 노른자위 신예단지만을 고집하지 않고 성장과정의 초기설비인 영월이나 군산화력도 끼워서 사준다면 다행이지만 결국 이는 요금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공기업의 가격인상은 제재할 수단과 명분이 있지만 외국 기업의 가격인상을 막을 근거는 없다. 전력산업 같은 기간산업을 외국에 매각한 멕시코 같은 IMF 선험국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발전산업이 수익성 중심으로만 흘러가면 한국표준형 원자로처럼 기술축적과 성장이 진척되고 있는 분야의 기술위축도 우려된다. 일본이 다소 높음직한 요금구조를 유지하는 대신 전력사업 및 관련사업과 건설업등의 기술발전에 재투자하는 정책을 고집하는 것도 궁극적인 경쟁력 우위를 위해서일 것이다.
외국자본에 매각을 생각하기에 앞서 전력요금 개편을 생각하는 것이 실질적인 개혁방안이 아닐까. 예컨대 산업용은 소폭 인상하더라도 가정용 전기료는 다소 인상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은 통일 이후를 대비해서 구상하여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 오늘(29일)은 고리 1호기로 원자력이 상업발전을 시작한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길게 보는 정책이 아쉽다.<전 한전기공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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