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立法 미적 日 정부에 ‘회초리’/정부책임 간접 인정 첫 사례/위안부 관련 소송 늘어날듯일본 야마구치(山口)지법 시모노세키(下關)지원의 27일 판결은 비록 일부의, 그것도 간접적인 책임 인정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지만 군대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국가 배상」으로서 위자료 지급을 명령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더욱이 이번 판결이 일본내에서 잇달아 제기된 군대위안부 개인 소송의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비슷한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며 한국인 군대위안부 피해자의 소송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카시타 히데아키(近下秀明) 판사가 판결문에서 일본 정부에 「국가 배상」을 명령한 직접적인 이유는 『군대위안부가 된 피해여성들이 전쟁중에 겪은 수많은 고통에 대해 아무런 보호 입법 조치를 하지 않고 방치함으로써 고통을 배가하는 새로운 침해를 했다』는 것.
판결문은 특히 『93년 정부대변인이 국가로서의 사죄의 뜻을 표함에 따라 입법 의무가 분명해졌으나 3년의 입법기간을 경과했다』고 지적, 「입법 부재」에 따른 피해 보상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군대위안부 제도가 철저한 여성 차별, 민족 차별로서 민족의 자부심을 짓밟은 기본적 인권의 침해』라고 인정하면서도 『현행 헌법제정 전의 사건에 대해 헌법상 「도의 국가」 의무를 적용하는 배상 의무를 지울 수는 없다』고 밝혔다.
즉 국가 배상금은 군대위안부 동원에 따라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전후에 이들을 적절히 보호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지 않은데 따른 추가 피해에 대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군대위안부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적절한 사후 보호 책임」을 지적한 것은 용어상의 차이일 뿐 경제·사회보장상의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서 실제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군대위안부 문제와 관련, 『65년 한일협정으로 정부로서의 배상 책임은 소멸했다』는 일본 정부의 일관된 주장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정부의 직접 배상」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민간단체인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을 통해 위로금을 지급하려는 일본 정부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또 판결문이 군대위안부 제도라는 역사적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이를 여성·민족차별이자 인격과 존엄성을 침해하고 민족의 자존심을 짓밟은 것이라고 밝힌 것도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 법원의 시각을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시민단체 반응/“위안부 직접배상은 아직 갈길 멀다”/“다른 인권침해 사안에도 영향” 일단 환영
일본 야마구치(山口) 지방법원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위자료 지급 판결 소식을 접한 국내 위안부문제 관련 시민단체들과 법조계는 『다소 미흡하지만 그동안 일본정부로부터 외면받아온 위안부 배상문제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중요한 판결』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민단체들은 그러나 『이번 판결은 일본정부에 대한 직접배상판결이 아니라 위자료지급 판결인 만큼 아직도 풀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박원순(朴元淳)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입법 부작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일본 법원이 인정한 것으로 일본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배상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이판결로 일본정부가 종군위안부에 대한 배상입법을 해야할 책임이 생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위안부 문제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다른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정신대연구소 정진성(鄭鎭星·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일제강점기에 대한 정부차원의 보상이 70년대에 종료됐다는 점을 들어 종군위안부에 대한 정부차원의 보상을 외면해온 일본 정부에 대해 입법의무 태만을 들어 위자료 지급 결정을 내린 것은 전향적인 판결』이라며 『앞으로 일본정부의 대응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 이희자(李熙子) 이사는 『정부차원의 직접 배상판결이 아니라 입법회피에 대한 정신적 위자료 판결인 만큼 아쉬움은 많지만 재판부가 일본정부의 배상책임회피를 꼬집은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양미강(梁美康) 총무는 『그동안 일본정부를 상대로 40여건이 넘는 피해보상 소송이 있었지만 승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액수가 미미하고 배상이 아닌 위자료지만 앞으로 일본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와 피해배상을 이끌어낼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판결이 일본 정부및 의회 차원의 일본군 위안부 배상문제의 법제화를 촉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우리정부가 일본정부의 공식사죄와 배상입법을 얻어내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김호섭 기자>김호섭>
◎판결문 요지
종군위안부 제도는 철저한 여성차별, 민족차별이며, 기본적 인권침해로 볼 수 있지만 일본 헌법 제정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곧바로 배상입법의 의무를 부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피고인 국가가 종군위안부 여성들에 대해 피해의 증대를 초래하지 않도록 배려, 보증할 의무가 있음에도 다년간에 걸쳐 방치해 고통을 배가시켰다.
93년 8월 내각관방외정심의실의 조사보고서에서는 일본 헌법상 배상입법의 의무가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으나 합리적 입법기간인 3년을 경과했음에도 국회의원이 입법을 하지않아 국가는 입법부작위에 의한 국가배상으로서 위안부 원고에 대해 각 30만엔의 위자료를 지불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공식사죄의 의무까지는 없다.
근로정신대 등은 속아서 어린 시절 가혹한 조건에서 근로동원된 점은 인정되지만 군대위안부 원고 등과 비교해 그 성질과 정도에 차가 있어 일본 헌법상 중대한 인권침해를 초래했다고는 볼 수 없다.
◎사건의 경과/92년 이후 계속 청구 계류 6건중 첫 판결
현재 군대위안부 출신 한국인이 일본 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이번 시모노세키 소송 외에도 도쿄(東京)지법에 6건이 계류중이다. 이날 판결은 그 가운데 첫 판결이다.
이번 소송은 이순덕(李順德·79·광주)씨 등 군대위안부 출신 한국인 3명과 유찬이(柳贊伊·72·부산)씨 등 여성근로정신대 출신 7명이 92년 12월부터 94년 3월에 걸쳐 차례차례 청구했다. 원고측은 전후의 국가배상법으로 거슬러 올라가 군대위안부 출신 1인에 1억1,100만엔, 근로정신대 출신에 각 3,300만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한편 일본 정부가 국회나 유엔에서 공식 사과할 것도 함께 요구해 왔다. 그동안 20여 차례의 구두 심리가 열렸고 지난해 9월에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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