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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니카/이병일 수석논설위원(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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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니카/이병일 수석논설위원(지평선)

입력
1998.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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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4월26일 내란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지방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 모처럼 장날을 맞아 시내광장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오후 4시께 주민들 머리 위에 독일공군의 폭격기와 독일이 자랑하는 하잉켈 전투기가 편대를 지어 나타났다.『그때 시장은 파장에 접어들고 있었어요. 갑자기 많은 비행기가 날아와 많은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하잉켈 전투기는 저공비행으로 길에 무차별 총격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아로나테기 신부는 정말 훌륭했어요.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광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신에게 기도를 올렸으니까요』

이것은 마침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다 폭격현장을 목격한 노엘 몽크스란 기자가 취재한 주민들의 증언이다. 광장 뒷골목으로 피신한 주민들은 넋이 나간채 「비행기 탄환 폭탄 화재」란 말만 되풀이했다고 전한다. 뒤에 밝혀진 것이지만 이날 공습으로 1,000여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인류역사상 민간인을 대량학살한 첫 공습으로 낙인찍힌 이 만행은 나치독일이 새로 개발한 무기를 시험한 무대이기도 했다. 이같은 나치독일의 만행과 주민들의 비극은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게르니카란 그림을 통해 전세계에 고발해 더 유명해진 것은 잘알려진 일이다.

독일하원은 24일 게르니카만행 사죄결의문을 채택했다. 헤어초크 독일대통령은 지난해 게르니카만행 60주년을 맞아 현지 주민들에게 사죄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의회가 이에 동참하고 나선 것이다. 독일은 진솔한 사죄를 통해 전후처리를 깔끔하게 해왔는데 게르니카만행 사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비하면 일본의 사죄는 「통석(痛惜)의 념(念)」등 흐릿한 말장난의 연속이었다. 주변국가의 국민들을 전쟁터로 내몬 것도 부족해 군대위안부까지 강제동원하는 만행을 저지르고도 아직도 솔직한 사죄를 기피하고 있다. 일본은 독일을 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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