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역사,희극인가 비극인가/안두희·40년 장기수 등장/권력에 의해 갇힌 민족그려/20년만에 한무대 서는 이호재·전무송 연기 감칠맛『시민이 말리려다가도 안두희다그러면, 죽여라 죽여 죽여 죽여. 파출소로 도망쳐도 안두희 내놔라그러면, 나(안두희) 보호 안해줘요. 왜냐. 이 죽일 놈이 살아 있다 이거요』 49년 백범 김구선생을 살해한 뒤 평생 보복에 시달리던 안두희씨. 그러나 그를 환영한 사람도 있었다. 백범선생 암살작전을 수행할 예정이었던 북한간첩 김동수였다. 그는 붙잡혀 비전향 장기수로 복역한다.
극작가 오태석씨의 상상력으로 이렇게 남·북한 테러리스트가 병원에서 만났다. 5월8일 동숭아트센터 대극장에 올려지는 「천년의 수인(囚人)」에서 이 만남은 우습고도 비극적으로 그려진다. 「물보라」 이후 이호재(안두희 역) 전무송(장기수 역)씨가 20년만에 함께 서는 무대이기도 하다. 구어체 구사에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이씨는 구차한 설명 없이 운율이 살아 있는 대사가 입에 착착 감긴다. 전씨는 뇌일혈로 쓰러지는 극중 설정 때문에 대사 대부분을 괴성으로 전달하지만(의미는 간호사가 통역) 그래도 모든 대사를 외워야 한다. 두 배우는 60년대 말∼70년대 중반 드라마센터, 국립극장등에서 오태석씨와 함께 작업했다.
두 사람은 물흐르듯 자연스런 연기로 오씨의 신작을 유머로 가득 채운다. 『부친이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목을 맸다. 장부가 세상을 살아감에 절개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아니냐』며 40여년간 전향을 거부한 장기수나 『민주주의가 먼저 입성하면 남북간에 혼란도 사라지리라는 생각에서 백범을 쏘았다』는 안두희는 확신에 차 있지만 그들의 역사의식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
비극은 되풀이되는 역사에 있다. 안두희와 같은 병실에는 5·18 당시 소녀를 쏘았다는 혐의로 재판을 앞둔 광주진압군 청년이 있는데 『발포를 명령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안두희와 마찬가지로 입을 다문다.
마지막 장은 안두희와 장기수의 역사의식을 조롱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두 사람은 『역사에 책임을 지겠다』며 광주진압군 청년을 구제해 달라는 탄원서를 남기고 복국을 먹고 죽기로 한다. 그러나 탄원서 문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티격태격하는 사이 옆 침대의 청년은 안두희로 오인받아 칼을 맞는다.
오씨의 의도는 「애초에 책임질 사람도 아닌 이들이 죽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는 것. 결국 수인처럼 갇혀 있는 것은 권력에 의해 분단된 우리민족이다. 조상건 정진각 김남숙 정원중 한명구씨등 출연. 6월14일까지 화∼목 오후 7시30분, 금 오후 4시30분 7시30분, 토일 오후 3·6시. (02)36734466<김희원 기자>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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