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탄광서 참혹한 생활… 생존자 7명 이름 밝혀94년 조창호(趙昌浩)씨에 이어 두번째로 지난해 12월24일 귀환한 국군포로 양순용(梁珣容·72)씨는 24일 가진 면역식장에서 『탄광에서 일하던 국군포로들의 상당수가 탄광사고나 노령 등으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됐다』며 『그러나 아직도 내가 알고 있는 생존자만 50∼6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양씨는 탄광에서 함께 일하던 「용환기 김수동 이차식 이영찬 양재구 강석룡 임점용」 등 생존자 7명의 이름을 들었다.
정부는 한국전 당시 북한에 포로로 끌려간 경우를 포함, 실종국군이 1만9,300여명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양씨에 따르면 국군포로들은 탄광지역 이외에는 일절 외출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되고 무단으로 외출하다 적발될 경우는 며칠씩 막장안에 감금되는 등 비참한 생활을 해왔다. 양씨도 53년7월13일 육군8사단 10연대 수색중대 이병으로 화천 금성지구에서 중공군과 전투중 포로가 된 뒤 함북 아오지탄광으로 끌려가 참혹한 생활을 겪어야 했다.
『충성, 신고합니다. 일병 양순용은 1998년 4월24일부로 면역을 명 받았습니다』 육군전투복에 일병계급장을 단 백발의 양씨는 45년만인 이날에야 비로소 「긴 전쟁」을 끝내고 민간인으로 돌아갔다.<정덕상 기자>정덕상>
◎“제사까지 지내는데 꿈인지…” 가족들 흥분/국방부,실종 7명 군적 찾아내
국방부는 이날 양순용씨가 증언한 실종자 7명의 군적을 찾아냈다. 국방부 관계자는 『그러나 강석룡, 양재구, 용환기씨 이외 나머지 4명은 군적에 동명이인들이 2∼7명씩 있어 정확한 당사자를 확인중』이라고 밝혔다.
전쟁 당시 육군소위로 실종됐다가 50년12월23일 전사처리된 강석룡(姜錫龍·78)씨는 부인이 전북 전주시 송천동에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인 김경례(金敬禮·75)씨는 이날 남편의 생존소식을 듣고 『경남 함양부근에서 남편이 전사했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아직 살아있다니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김씨는 『시아버지가 전장을 헤매면서도 시신을 못찾아 77년 돌아가실때까지도 끝내 아들의 죽음을 믿지 못하셨다』며 『생존이 확인된 만큼 이제라도 정부가 송환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환기(龍煥基·76)씨의 동생 환호(煥鎬·56·충북 단양군 단양읍)씨는 『TV뉴스를 보던중 양순용씨가 생존포로중 형의 이름을 거론, 깜짝 놀랐다』며 『동국대재학중 학도병으로 입대한 형이 강원 철원전투에서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았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양재구(梁在求·67)씨의 형 재용(在龍·71·광주 광산구 도덕동)씨도 『동생이 살아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동생이 53년3월 부상당해 병원에서 숨졌다는 전사통지서를 받고 화장한 재를 가져다 마을 앞산에 묻고 숨진 마을처녀와 혼령결혼식까지 치렀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이와 함께 이차식씨와 임정용씨 등 나머지 가족들도 양순용씨의 증언에 나온 인물이 혹시 자신의 혈육일지도 모른다는 간절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이차시(李且時·66)씨의 부인 최순이(崔順伊·67)씨는 『남편보다 두살 위인 시숙(차식·且植)이 입대후 걱정말라는 편지만 한번 보내오고는 소식이 두절돼 전사한 것으로 알고 지금껏 제사를 지내고 있다』며 안타까와 했다.
경기 부천시 소사구 심곡동에서 어머니 이원순(99)씨와 함께 살고있는 임용자(林龍子·67)씨도 『오빠(임점용·70)가 51년 1·4후퇴후 입대했다가 그해 8월 부대원 전체와 함께 전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기대감을 보였다.<정덕상·최수학 기자>정덕상·최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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