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최윤·배수아 등 치밀분석/22편글에 세기말 한국사회 투영/소설 시각화 뚜렷 장정일이 선도/시에선 ‘新표현주의’ 경향 드러나「악마의 산물이 문학이라는 담론이 욕망에 젖은 거리에 출렁거리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주연(57·숙명여대 독문과 교수)씨는 곧 출간할 9번째 평론집 「가짜의 진실-세기말의 문학풍경」(문학과지성사 발행)을 이 말로 시작하고 있다. 60년대 중반부터 30년 이상 비평현장을 지켜온 김씨가 90년대 한국문학과 사회를 한 마디로 나타낸 말이다.
「가짜의 진실」에는 90년대의 대표적 소설가·시인을 치밀하게 분석한 22편의 글이 실려 있다. 소설가는 최윤 이순원에서 윤대녕 장정일 배수아까지, 시인은 다소 멀리 신경림 마종기에서 채호기 이정록까지. 그는 「따라가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거부하기도 어려운 현실」인 90년대문학의 한복판을 헤집어 보인다. 자신의 겸양처럼 단지 「세기말 작가들과 어울리게 된 60년대 한 비평가의 자기변명」이거나 전문적 문학평론이기를 넘어, 세기말의 한국사회와 문화를 비쳐볼 수 있는 거울이 되는 글들이다. 김씨가 늘 비평의 중심에 두는 것은 문학의 힘에 대한 믿음이다. IMF이후 한 평자는 90년대 젊은 작가들의 문학을 「거품」이라고 비판했지만 김씨는 『그래도 작가들은 정신사적 측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는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 그것이 모여 새로운 문학의 총체성이 구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책에 실린 평론들은 문학계간지 「동서문학」에 96년 이후 연재한 것들. 『30여년동안 쉼없이 해온 일이어서 처음에는 나이 먹었다는 생각 없이 했는데 막상 하고 보니 90년대문학은 상당히 다르더라』고 그는 말했다. 세상과 역사의 변화가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특히 소설에서는 사회의 사이버 스페이스화에 따른 시각화경향이 두드러졌다. 과거의 소설이 동역학의 세계였다면 지금은 정역학의 세계라 비유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장정일은 선구적입니다. 그가 「아담이 눈뜰 때」에서 말한 「내 나이 열아홉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는 의식은 이후 90년대 작가들에게서 다양하게 변주된 형태로 나타나지요. 그 말이야말로 가상, 화상, 영상에 몰입하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인간의식을 보여줍니다』. 두번째 큰 특징은 작가가 가치판단·모랄과 전혀 무관하게 작품에서 자신을 날것으로 드러낸다는 점. 김씨는 『우리 세대가 문학에 대해 가져온 기대나 통념인 「문학은 나의 구원·종교」라는 식의 정신적인 힘이 사라지는 것같다. 특히 시에서는 「신표현주의」경향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이것이 드러나는데 음악으로 치면 화음과 소음의 경계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한다1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문학의 창조적 힘에 대한 신념을 거듭 드러냈다. 『IMF시대의 문학은 사회적 현상을 벗어난 보다 큰 틀에서 정신적 자부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자부심이야말로 사회적 자정력이 되는 것이지요』 <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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