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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달러 감식법(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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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달러 감식법(궁금합니다)

입력
1998.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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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위폐만 판별 감식기는 불완전/지질·잉크 확인등 최종판단은 사람의 몫최근 몇 개 시중은행이 10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시중에 유통시켰다는 혐의로 경찰수사를 받았다. 알려진대로 은행이 위폐 유통의 「앞잡이」노릇을 했다면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말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나라 살리기운동으로 「달러 모으기」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지갑 속에 모아둔 1달러 지폐는 물론, 책상 서랍에 쳐박아 둔 외화 동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은행 환전창구는 붐비기 시작했고, 기존의 은행 외환부 인력으로는 쏟아지는 「달러」를 감당할 도리가 없었다.

30여년 동안 외화감식업무를 맡으며 위폐 감식기술로 기네스북에까지 오른 외환은행 외환업무부 서태석(徐太錫·55)과장의 이야기. 『지점에서 들어오는 달러를 챙겨 외국으로 보내기도 바빴습니다. 지점에서 일단 확인한 돈을 한 번쯤 더 감식해야 안심이 되긴 하지만 너무 일이 많다 보니 100달러로 묶은 뭉치 겉면을 확인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일 정도였습니다』

전국에 「달러 모아 나라 살리자」는 「애국열풍」이 불 때 은행 환전창구 직원들이 당한 말 못할 곤욕과 고민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쏟아진 돈을 정리하느라 새벽 1∼2시까지 남는 일이 예사였다.

환전창구는 위폐와 전쟁하는 곳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감식에는 전문가와 감식기 두 가지가 함께 동원된다. 하지만 문제는 전문가는 많지 않고, 감식기는 100% 믿을 수 없다는 점.

감식기는 가짜 돈이 진짜 돈과 공통적으로 다른 점을 확인해 위폐로 가려낸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슈퍼노트」 100달러짜리는 앞면 왼쪽 아래 숫자 「100」을 둘러싸고 있는 외곽선이 한 곳으로 만나며 흐릿하다는등 진폐와 서너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이런 점들을 감식기에 들어 있는 컴퓨터 칩이 읽어내 위폐를 확인하고 신호를 보내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슈퍼노트용 감식기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위폐는 가려내지 못한다. 실제로 10∼20년 전에 만들어진 「저급한」 위폐를 진폐로 알고 넘어가는 경우가 생긴다. 또 현재 국내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는 일제 감식기는 달러를 한 장 한 장 넣어 판별해야 하기 때문에 일의 효율성이 너무 떨어진다.

외환은행 서과장은 『최근 위폐소동을 듣고 외국에서 감식기를 팔아 보겠다고 여기저기서 몰려들고 있지만 기계가 하나같이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과장은 최근 테스트해 본 독일제 감식기는 달러다발을 한꺼번에 감식하기는 하지만 정밀함이 떨어져 지폐에 난 흠 때문에 진짜 돈을 가짜로 판독하더라고 말했다.

결국 최종적인 위폐판단은 기계가 아닌 인간의 몫이다. 국내 최고의 위폐감식가로 통하는 서과장은 96년 미국의 FBI요원들이 보는 앞에서 25초만에 달러 100장의 위폐여부를 족집게처럼 가려내 역량을 과시했다. 웬만한 위폐는 만져만 봐도 알 수 있다. 진폐는 여러가지 종이원료가 혼합됐지만 위폐는 고급종이라도 단일한 지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래서도 판단이 서지 않으면 잉크색깔을 눈으로 확인, 100% 위폐를 가려낸다. 일손이 달려 모든 화폐를 감식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일 뿐.

100만달러 지폐가 과연 있을까. 너무 고액권이라 싶어 의심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런 지폐가 있는 줄 알고 받아 챙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100만달러 지폐는 없다. 미국 달러화는 10만달러가최고액권이다.

하지만 이런 고액권은 심심치 않게 나돌아 「잘 모르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은행관계자들에 따르면 1주일에 한 두번은 『100만달러짜리 지폐를 거래하려는데 이런 돈이 있느냐』고 묻는 전화가 걸려온다. 94년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사업가에게서 아파트 중도금으로 받은 100만달러 4장을 들고 온 사람이 위폐판정을 받고 거의 실신하다시피 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에는 은행에 100만달러짜리 5장을 맡기고 보관증을 받아 제2금융권에 이 보관증을 담보로 돈을 빌린 사람이 잡히기도 했다.

위폐는 동남아 중남미지역의 불법취업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미군부대 주변업소와 항구에서도 곧잘 위폐가 발견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항구도시의 홍등가를 통해 위폐가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중국이나 동남아 상선, 어선들이 드나들면서 하룻밤 묵은 뒤 가짜 100달러 지폐를 내놓고는 다음날 「줄행랑」 놓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국내에는 슈퍼노트까지밖에 발견되지 않았지만 외국에서는 이보다 더 질이 높은 슈퍼 K, 슈퍼 빌등의 신종 위폐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김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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