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유럽, 94년 멕시코, 97년 동남아 국제금융위기의 배후 핫머니/막강한 정보·자금력 무기로 단기수익만 빼먹고 이탈/일단 ‘사냥감’으로 찍히면 주가·금리·환율이 널을 뛴다마치 메뚜기떼의 행태다. 단기 수익을 좇아 국제금융시장을 파죽지세로 넘나들고 그때마다 그 나라의 주가 금리 환율은 널뛰듯 춤을 춘다. 이익만 남기면 그만인 거대한 투기자금. 국경은 의미가 없다. 세계 자본시장을 무대로 컴퓨터의 「엔터」
(enter)키 하나만 치는 것으로 순식간에 수십억달러의 베팅이 이루어 진다. 연기금 일반투자자 등 장기투자세력이 금융시스템 불안에 편승, 단기 투기자금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이른바 핫머니(Hot Money). 세계경제의 다이너마이트로 여겨지는 투기성 단기자금이다.
핫머니가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그 위력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 간다. 94년 멕시코 페소화 폭락, 95년 영국 베어링사 파산, 96년 동남아 통화위기. 전세계를 무대로 벌어지는 세기의 「머니게임」들, 그리고 국제금융위기는 언제나 핫머니가 그 배후로 지목된다. 국내에도 지난해 12월말이후 1조원 이상의 핫머니가 집중 유입돼 증시를 넘나 들며 주가와 환율을 주무르고 있다. 달러고(高)를 기반으로 거대한 투기자금이 형성되면서 더이상 지구상에 핫머니의 안전지대는 존재하지 않게 됐다. 국제통화기금(IMF)도 13일 세계경제전망에서 핫머니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전형적 핫머니인 헤지펀드의 활동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각국 정부에 촉구했다.
지난해 동남아 외환시장을 교란시킨뒤 썰물처럼 빠져나간 핫머니 군단은 현재 폭등장세를 나타내는 미국 뉴욕증시에 잠복, 또다시 빠져나갈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핫머니가 월가(街)를 일시에 이탈할 경우 미국증시에는 87년 「블랙 먼데이」와 같은 엄청난 충격이 가해질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 수석연구원은 『미국 증시의 거품붕괴는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며 『헤지펀드 등 전형적인 핫머니뿐만 아니라 장기투자를 목적으로 월가에 들어간 자금들까지 핫머니화, 증시붕괴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핫머니의 주특기는 돈이 되는 시장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치고 빠지기. 막강한 정보력과 자금동원력이 바탕이다. 사냥감으로 지목한 국가의 주식 및 외환시장에 거품을 일으킨뒤 거액을 챙기고 일시에 빠져나간다.
핫머니를 대표하는 헤지펀드는 전세계적으로 4,700여개. IMF는 헤지펀드 자본금을 작년말 현재 1,000억달러로 추산했으나 실제로는 3,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헤지펀드의 주투자대상인 파생금융상품은 10%미만의 증거금으로도 거래가 성사되기 때문에 통상 자기자본의 20배까지 투자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6조 달러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IMF 회원국 140여개 국가의 중앙은행 외환보유고보다 4배나 더 많은 액수다. 단 0.1%라도 높은 이윤을 좇는 이 국제자본은 하루 거래량만도 2조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핫머니는 워낙 덩치가 커서 조금만 움직여도 자금시장이 취약한 저개발국은 휘청거릴 수 밖에 없다. 바트화 폭락사태 전 태국시장을 빠져나간 헤지펀드는 수십억 달러에 불과했다. 지난해 여름 동남아 국가에서 빠져나간 미국의 뮤추얼 펀드는 투자자금의 10∼20%에 불과했지만 해당 국가들은 연쇄적으로 금융공황에 빠졌다.
특히 90년대들어 각광받는 외환투기의 게임대상은 각국의 중앙은행이어서 그 파괴력도 엄청나다. 상대방 중앙은행의 대응능력이 약화할 징후가 보이면 핫머니는 지체없이 공격을 개시한다. 핫머니가 승리할 경우 순식간에 수십억 달러를 벌 수 있다. 타이거 펀드는 작년 여름 태국 바트화 평가절하 과정에서 치고 빠지는 수법으로 10억달러를 벌었다.
92년9월 국제외환시장에서 영국 파운드화와 이탈리아 리라화, 스페인 페세타화에 대한 투매현상이 일어났을때는 약 1,000억달러의 헤지펀드가 투입됐다. 그리고 이는 유럽 중앙은행들의 시장개입노력(하루 시장개입액 약 10억달러)을 수포로 만들었다.
핫머니는 고도성장을 하는 국가에서는 개발자금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가 불안해지면 썰물처럼 빠져나가 그나라 경제를 어지럽힌다. 핫머니의 이중성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핫머니가 시장환율이 정상에서 벗어났을때 이를 되돌리는 국제금융의 경찰역할도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최근 소로스 등이 이끄는 헤지펀드에 대해 「못된 투기꾼」「돈많은 저능아」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핫머니의 양산은 「강한 달러」의 위력에서 비롯됐다. 미국 경제의 장기호황이 달러를 강하게 만든 것이다. 일부 저개발국들은 경제개발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스스로 시장의 문을 열었지만 국제 유동성자금은 미행정부를 앞세워 저개발국의 자본시장을 강제로 개방시켰다. 미국 자금이 주류를 이루는 핫머니 군단이 만일 월가를 빠져나올 경우 다음 차례는 어느 국가, 어느 시장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남대희 기자>남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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