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험문제에 가령 이런 문제가 나왔다고 하자.「동네 공중목욕탕 안에 이발소가 있다. 이 이발소에 머리 감는 세면대가 꼭 필요할까요, 아니면 필요 없을 까요」 장난 꾸러기가 아닌 한 정답은 「필요없다」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이 답은 작년 상반기까지는 법적으로 틀렸다.
공중위생법 시행규칙 제2조. 「이·미용업을 하고자 하는 자는 내수성(耐水性)자재로 세면 또는 세발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며 공중목욕탕 내의 이발소에도 적용했다. 그런데 이 조항의 어리숙함이 이를 고안했던 공무원들 자신의 눈에도 이상하게 비쳤던 모양이다. 그래서 개정된 것이 지난해 하반기의 일이었다. 「공중목욕탕 내의 이발소는 세면 세발시설이 없이 목욕탕의 샤워시설을 함께 이용해도 된다」라고. 가히 「컬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발견이 아닐수 없다.
그래도 이상하다. 공중목욕탕 외의 이발소에는 이같은 조항을 굳이 적용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발소를 차릴 사람이면 어련히 세면 세발 시설을 갖추지 않겠는가.
머리를 감겨주지 않는다면 당연히 이발요금이 낮아지지 않겠는가. 이 규정만 없다면 IMF시대에 보다 값싼 이발소가 생길 수 있을텐데…. 이게 시장원리가 아닐까.
규제가 해소되면 가격경쟁과 함께 새로운 직업이 양산될 수 도 있다는 주장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식품위생법에 이런 조항이 있다. 「상시 종업원 100인 이상 업체의 구내 식당엔 영양사를 의무적으로 고용해야한다」 대부분 육체노동이 주류인 중소제조업체의 구내식당을 들여다 보자. 어떤 노동자는 대학에서 영양학을 전공한 영양사에 의해 마련된 식단이 좋다고 할 수도 있다. 반면 어떤 이는 식당 아주머니의 손때가 묻은 풍성한 김치와 국물, 그리고 고봉으로 담은 쌀밥이면 노동후의 식욕을 달래는 데는 그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영양사가 있든 없든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업체의 사정이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중소업체들은 영양사를 의무고용해야 하는 탓에 불만이다. 식당 아주머니의 2,3배 수준인 급여부담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영양사를 의무고용하는 대신 일용직 식당 아주머니를 해고해 버린다. 하얀 가운을 입은 섬섬옥수의 영양사에게 밥짓고 김치담그고 설겆이도 하라니 영양사도 남아있을 리 만무하다. 상식적으로 영양사 고용은 회사 형편에 따라 권고사항 정도로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새정부들어 총리와 관료출신 민간인이 공동위원장인 규제개혁위원회가 다시 발족했다. 위원으로 위촉된 인사들의 면면이 행정규제의 피해를 실감해 본 사람들 같지는 않다. 자칫 규제개혁이 지난 정부에서 처럼 소리만 요란한채 건수 위주의 전시행정으로 흐르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앞서 지엽적인 사례를 들어 행정규제의 허실을 장황하게 이야기한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 행정규제의 대부분은 공무원들의 관존민비(官尊民卑)적 사고와 무사안일 습성에서 출발한다. 무지렁이 같은 민초들에겐 모든 것을 이래라 저래라 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관료습성이 바로 행정규제로 나타난다. 집하나 짓는데 관련 기관마다 돌아 다니며 수십개의 도장을 받아야 할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도장을 찍는다는 것은 권한 만큼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수십개의 도장이 필요한 것은 책임은 수십분의 일로 분산시키고 권한은 챙기겠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규제개혁이 성공하려면 공무원들의 의식개혁부터 선행돼야한다. 그러나 의식개혁 처럼 빈 말도 없다. 규제개혁위원회의 구성부터 실질적으로 해야한다. 규제의 피해자들이 규제개혁의 주체가 돼야 한다. 중소 건설·제조업자 요식업자 영세상인등 규제에 시달리는 밑바닥 민초들의 하소연을 들을 수 있는 체제구축부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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