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6월 프랑스가 발행한 500프랑짜리 지폐의 디자인은 식민지에 대한 프랑스의 집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지폐 가운데에 프랑스공화국의 심벌인 마리안느가 자리잡고 있고 수단의 흑인, 베트남인, 아랍인등 프랑스 식민지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베트남사람이 여기에 끼여 있다는 것은 프랑스가 그만큼 인도지나반도를 중시했다는 증거다.프랑스는 베트남을 발판으로 캄보디아를 지배했다. 프랑스는 12세기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캄보디아의 크메르왕국이 왕실의 분열과 태국의 침략으로 쇠퇴하기 시작한 후 베트남이 국민들을 캄보디아에 이주시키는 등 합병을 노려왔다는 역사적 사실에 착안, 베트남인 하급관리를 전면에 내세워 캄보디아를 통치했다.
악역을 맡은 베트남인 하급관리들은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베트남복을 입도록 강요하고 불교를 탄압했다.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베트남은 프랑스 못지않은 원수였다. 이같은 원한에 대한 복수를 행동으로 옮긴 대표적 인물이 킬링필드의 주역으로 「인간백정」인 폴 포트였다. 캄보디아의 현대사는 베트남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묘하게도 75년 월맹의 사이공 접수와 거의 때를 같이해 정권을 잡은 폴 포트는 프랑스와 베트남, 그리고 원수들과 손잡는 것을 서슴지 않는 국왕 시아누크에 대한 복수, 즉 역사 바로세우기와 농민천국을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전국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0만명을 학살했다. 바로 외세공포증과 헛된 이상이 캄보디아를 농민천국이 아닌 「피바다」로 만든 것이다.
이같은 피의 역사도 폴 포트의 사망으로 막을 내리게 됐지만 독재자의 비뚤어진 역사 바로세우기와 망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사실적으로 말해준다. 반인륜적인 죄를 저지른 그가 죄값을 치르지 않고 죽은데 분노마저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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