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폭동·사할린동포… 우리 현대사 기록 10년/마무리 촬영차귀국 김대실 감독/“유대인은 자신의 비극 스스로 널리 알렸지만 우린 자료조차 빈약”『과거를 정리하지 못하면 현재와 미래도 불투명합니다. 과거의 기록을 남겨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미래의 방향을 잡도록 도와주는 것이 기록영화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올해로 환갑을 맞는 재미동포 독립영화감독 김대실(金大實·여)씨. 그가 다큐멘터리 「일본의 군수물자한국인 위안부」(가제)의 마무리 촬영을 위해 잠시 고국을 찾았다.
김감독은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는 감독. LA흑인폭동을 다룬 「사이구(4·29)」(92년), 사할린의 한인 이야기를 기록한 「잊혀진 사람들사할린의 한인들」(95년), 미국의 다민족주의를 담은 「아메리카 비커밍」등 그의 모든 작품은 미국의 PBS를 통해 전국에 방송됐다. 「잊혀진…」은 SBS에 의해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성과에 힘입어 그는 록펠러재단으로부터 30만달러를 받아 이번 작품에 착수했다.
김감독의 영화경력은 10년. 신인도 중진도 아니다. 황해도 안악이 고향인 그는 이화여고와 감리교신학대를 졸업했다. 62년 도미, 미국 보스턴대에서 종교철학박사학위를 받아 10년간 마운트홀리오크대에서 신학을 가르쳤고 이후 7년은 뉴욕주예술위원회에서 미디어디렉터로 일했다. 안정된 직업을 포기하고 88년 나이 50에 새삼스럽게 영화를 시작한 이유는 「계속 심부름만 하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많은 나이가 가진 장점도 컸다.
『LA흑인폭동이 일어나 한국인 상가가 불타고 있을 때 미국 방송은 언어 때문에 주로 교포2세를 취재했어요. 저는 직접 1세를 인터뷰했습니다. 스스로 땀을 흘린 1세와 그 밑에서 자란 2세의 느낌은 다를 수 밖에 없죠』
해방과 6·25등 한국현대사를 직접 목격했고, 대부분의 이민 1세처럼 조국에 부채의식을 가진 그는 우리의 어두웠던 과거를 찾아나섰다. 첫번째가 사할린이었고, 두번째가 위안부이다.
『유대인은 그들의 비극을 스스로 널리 알렸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힘이 없었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이를 등한시했기 때문이었어요. 「여자들의 문제」라는 것도 큰 이유였죠』
정신대를 취재하면서 김감독은 관련자료가 한국보다는 미국에 더 많다는 것을 알았다. 강대국의 창고 구석에서 외면받는 조국의 비극이 안타깝기도 했다. 이미 20시간이 넘는 자료화면을 미국에서 구해놓았다.
「일본의 군수물자…」는 9월께 완성된다. 김감독은 93년부터 써 온 같은 제목의 책도 동시에 출간할 예정이다.<권오현 기자>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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