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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고 부지런한 대통령/최규식 정치부장(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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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고 부지런한 대통령/최규식 정치부장(광화문)

입력
1998.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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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임기 말기에 이런 얘기가 돌았다. YS는 어떤 유형의 대통령인가. 머리가 안좋고 게으른 대통령, 머리는 안좋지만 부지런한 대통령, 똑똑하면서 게으른 대통령, 똑똑하고도 부지런한 대통령 중에서.이 얘기는 그 당시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군에서는 오래전 부터 있어 왔던 말이다. 대통령의 유형이 아니라 지휘관의 타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기서 가장 형편없는 타입이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지휘관이다. 자기 머리 생각은 하지 않고 일만 벌이다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반면 가장 우수한 스타일은 똑똑하면서 게으른 지휘관이다. 똑똑하고도 부지런한 지휘관은 그 다음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어떤 유형이어야 하는가. 아니 그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어떤 유형의 지도자인가. 아마 똑똑하고도 부지런한 타입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큰 다행일 성도 싶다. 난제가 산적한 나라에서 똑똑한 대통령이 부지런히 모든 일을 직접 챙기는 것이 마음 든든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취임전부터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 「IMF 체제」와 맞서 싸우는 모습과 그 결과에서 국민들이 느낀 감정도 비슷할 것이다. 똑똑하고 게으른 지도자가 제일 낫다는 말은 태평성대에나 통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해도 대통령이 국정의 구석구석을 빼놓지 않고 직접 챙기는 것이 과연 어느 정도나 가능할까. 대통령이 모든 일에 대해 언급하고, 정리하고, 지시하는 것이 최선일까. 부작용은 없는 것일까.

김대통령이 취임후 정부 부처로부터 받고 있는 업무보고를 보며 이런 것을 느꼈다. 우선 대통령은 말을 아주 많이 한다. 대통령의 말에는 사태의 원인부터, 그로 인해 초래되는 구체적인 현상, 그에 대한 대책까지가 모두 담겨 있다. 저렇게 모든 사안을 꿰뚫고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까 하는 경외심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모든 것을 말해버렸으니 각료나 청와대 참모는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까. 대통령 말대로만 하면 되니 스스로 사고하고 대처 방법을 창안해 내는 「정신활동」을 그쳐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든다. 대통령의 말이 모든 사안의 가이드 라인이 돼 있으니 그 후에 파생되는 현상에 대한 대책을 놓고도 대통령만 쳐다 보는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든다. 새정부의 주요정책 결정과정에 몇차례 혼선이 일고 정책조정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모두가 대통령만 쳐다보고 있기에 생기는 현상은 아닐까.

모든 국정내용에 대해 일일이 대통령이 원인분석을 하고, 교통정리를 하고, 대책을 지시하고 하면 책임도 모조리 대통령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국정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개별 사안에 대해 책임지는 각료나 참모도 있어야만 정부조직이 생명력있게 돌아 가는 것 아닐까.

어느 조직이든 1인자가 자리를 비웠을 때 토론이 오히려 잘 이뤄지고, 다양한 아이디어와 대책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 것을 모두 경험해 봤을 것이다. 지금 새 정부의 각종 주요회의는 거의 다 김대통령이 직접 주재한다. 그런데 똑똑한 대통령에 어느 정도씩은 주눅이 들어 있는 구성원들간에 활발한 토론과 대안제시가 가능할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김대통령의 야당 총재시절 『DJ의 유일한 참모는 바로 그자신』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이다. 각료와 참모들에게 일을 좀 더 맡기고, 책임도 지우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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