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서 공산주의 심취/교사·농민해방운동 전개/75년 집권후 200만명 학살/권좌 쫓겨난후 게릴라활동15일 오후 11시15분 태국 인근의 캄보디아 밀림지역의 초라한 오두막집. 한 사람이 비참하게 죽은 채 발견됐다. 역사와 정의의 단죄를 뒤로 한 채, 현대사에 가장 큰 비극인 킬링 필드(대량학살)를 자행한 「인간 백정」 폴 포트가 숨진 것이다. 그의 나이는 73세로 추정된다.
「얼굴없는 사나이」인 폴 포트는 79년 1월 캄보디아 밀림지역으로 은신한 이후 늘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망명 자살 타살 자연사 체포 등 수많은 소문만 무성했다.
97년 7월25일 홍콩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네이트 테이어 기자의 카메라에 크메르 루주내 반대세력에 의해 체포된 폴 포트가 재판을 받고 있는 장면이 포착됨으로써 19년만에 그의 실체는 확인됐다.
캄퐁통 지방의 중농가정에서 살로트 사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프놈펜에서 공부하다 49년 당시 지배자였던 프랑스의 장학금을 받아 파리 유학길에 오른다. 파리행은 그의 인생항로를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 당시 유럽대륙을 휩쓸던 좌익사회주의 운동에 심취, 전공인 전자분야공부를 게을리 해 낙제를 하고 53년 조국으로 되돌아 갔다. 그는 10년간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면서 농민해방운동을 전개했다. 이때 폴 포트란 이름으로 개명했다.
그는 60년대 프랑스에서 귀국한 좌파 인텔리겐차와 북부지역의 농사를 짓던 크메르족을 중심으로 지하조직인 크메르 루주를 결성, 외국식민세력과 봉건지배계층 타도 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마오쩌둥(毛澤東)주의를 신봉하며 농민천국을 지상과제로 삼았다.
75년 4월 미국의 지원을 받던 론 놀정권을 붕괴시키며 권좌에 오른 폴 포트는 키우 삼판, 손 센 등 지도부와 함께 화폐제도 사유재산 종교 등을 폐지하고 관료 지식인 도시민 등을 닥치는대로 살해했다. 단지 안경을 쓰거나 외국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학살당해야 했다. 「킬링 필드」 그자체였다. 3년8개월동안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 1인 200만명이 학살됐다.
그는 베트남의 침공으로 2만명의 크메르 루주 조직원을 이끌고 밀림지역으로 잠적한 뒤 93년 유엔감시하에 실시된 총선에 불참, 정부를 상대로 내전을 거듭해왔다. 5년전만 해도 국토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전투를 벌이던 크메르 루주가 정부의 공격으로 500여명의 조직원만 남은 상태에서 타목 사령관은 지난해 6월 폴 포트를 체포했다. 이로써 폴포트와 크메르 루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어떠한 이상이나 이데올로기도 인간생명만큼 중요하지 않다」라는 역사적 교훈을 남긴 채.<배국남 기자>배국남>
◎현지 표정/파자마 차림으로 최후맞아… 사흘안에 화장할 예정
○…크메르 루주가 16일 폴 포트의 시신을 공개했다.
태국 국경에서 8001,200m가량 떨어진 오두막 안의 한 침대 위에 뉘어진 이 시신을 본 기자들은 백발의 노인이 파자마차림으로 숨져있었다고 말했다. 현장을 확인한 WTN의 한 기자는 AFP와의 회견에서 『공개된 시신의 주인공이 작년 안롱 벵에서 인민재판을 받던 폴 포트와 동일한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시신이 안치된 오두막에는 시신 보존제로 쓰이는 포름알데히드 냄새가 심하게 났으나 시체는 깨끗하고 상처나 부상의 흔적은 없었다고 이 WTN기자는 밝혔다.
또 일그러지지 않은 얼굴에 양손은 몸통옆에 축 쳐진 채로 놓여 있었으며 머리위에는 재스민 화환이 걸려 있었고 코는 솜으로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시체옆에는 슬리퍼 한 켤레가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는데 크메르 루주측은 이것이 폴 포트가 신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신 공개 당시 오두막에는 폴 포트의 아내와 딸, 조문객 5명이 크메르 루주 병사와 함께 있었다. 크메르 루주 간부들은 또 현장에 있던 5명의 기자들에게 그의 시신을 사흘안에 화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내가 모기장 치다 발견
○…폴 포트를 감시하던 르메르 루주 게릴라 논 노우는 16일 AP통신과의 전화회견에서 『폴 포트의 아내가 15일 밤 우리를 찾아와 남편을 위해 모기장을 치던중 그가 숨진 사실을 발견했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폴 포트의 사망에도 불구 대량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활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진상규명을 책임지고 있는 한 고위 관계자가 16일 밝혔다.
「킬링 필드」의 진상규명을 위해 자료 및 증거수집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캄보디아문헌센터(CDC)의 육 창 소장은 이날 『폴 포트의 죽음이 우리의 조사활동이 종식됐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CDC가 아직도 증거를 수집중』이라고 말했다.<프놈펜 외신="종합">프놈펜>
◎캄보디아 정국 전망/훈센,정적들 모두 제압 대세장악
캄보디아는 현재 캄보디아인민당(CCP)을 이끄는 훈 센 제2총리가 대세를 장악하고 있다.
93년 5월 유엔 중재로 실시된 총선 이후 캄보디아는 시아누크국왕의 아들이자 민족연합전선(FUNCINPEC) 부당수인 노로돔 라나리드가 제1총리를 맡고 훈센이 제2총리를 맡아 4년간 어정쩡한 동거를 했다.
「적과의 동침」은 공동의 적인 크메르 루주가 약화하면서 금이 가기 시작해 97년 7월 내전으로 치달았다. 군사력이 우월한 훈센파는 수도 프놈펜 등 주요 거점을 곧 장악했고 시아누크와 라나리드는 국외로 탈출했다.
훈센은 화합책으로 올 3월30일 태국에 머물던 라나리드의 일시귀국을 허용,프놈펜에서는 라나리드 지지파와 훈센 지지파간의 시위대결이 이어지고 있다. 베이징(北京)에서 요양중이던 시아누크국왕도 11일 귀국하며 양파의 중재역을 자임했지만 왕궁이 있는 프놈펜이 아니라 시엠 리프의 별궁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훈센은 당초 5월로 예정됐던 총선거를 7월에 실시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지만 시아누크와 라나리드파, 크메르 루주 잔당이 다시 세를 얻지 못하는 「게임의 룰」을 연구중인 것으로 보인다.<신윤석 기자>신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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