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NO라는 칼뽑자” “과열경기 거품조심을”일본 보수파의 대표적 논객으로 89년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 소니 명예회장과 함께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써서 세계적인 충격을 던졌던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가 문예춘추(文藝春秋) 5월호에 「다시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실었다.
한편 미 뉴욕타임스는 12일 전성기에 달했던 일본과 호황이 지속되는 미국을 비교하면서 미국이 10년전 일본처럼 자만감에 빠지고 행동도 똑같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과 미국의 경제패권 싸움은 현재 미국 쪽에 기울고 있지만 일본은 경제적 잠재력을 무기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외치고 있고 미국은 미국대로 지나친 호황의 거품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두 글을 간추린다.
◎美의 ‘돈경제’보다 日의 ‘물건경제’가 우위/엔공영권 구축전략 필요
80년대말 미일경제전쟁에서 위기에 몰렸던 미국이 패권 장악을 위해 짜낸 지혜는 군사력과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유지다. 세계 최대 채무국과 채권국의 처지가 뒤바뀌어 부자가 일용할 양식에 어려움을 겪는데 거지가 호사를 누리는 이상한 구조는 미국채를 구입, 일본이 미국에 조공해 온 것이 숨은 이유다.
그런 부로 미국은 호황, 엄밀하게는 뉴욕 주식시장의 호황을 맞고 있지만 실은 미국 경제는 대단히 위험하다. 주가가 어떤 계기로 하락하기 시작하면 미국발 세계공황의 불이 당겨진다. 주가 하락의 요인으로 미국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일본의 미국채 매각이다. 추산에 따르면 일본이 보유한 모든 미국채를 매각하면 달러화가 달러당 50엔 정도로 폭락, 「일본의 지갑」에 의존해 온 시스템이 붕괴한다.
일본이 미국 국민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는 셈이어서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외교전략상 소중한 카드이다. 물론 「칼」은 뽑지 않는 때 진정한 효력을 발휘한다. 무조건 노(NO)하자는 것이 아니다. 예스(YES)만으로는 협상이 안되니 노(NO)해야 할 때는 노(NO)하자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게임 감각이다.
일본 경제 전체의 잠재력은 여전해 회복의 여력이 충분하다. 가정의 금고에서 잠자고 있는 자산을 끌어 내 대아시아 헤지펀드 등 금융상품을 개발하거나, 미국채를 일부 매각해 엔결제 기금으로 아시아에 지원하거나, 새로운 통화인 유러와 제휴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생각해야 한다. 금융파탄을 일으켰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아시아에 엔을 기축통화로 하는 「대동아 엔공영권」 구축 전략은 아시아의 환영을 받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돈을 빼면 미국이 비난하겠지만 「엔화 기금을 창설해 독자적으로 대외협력을 실시하겠다」고 당당하게 답해야 한다.
달러 환류 체제에서 슬슬 해방돼야 한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들이밀고 있는 이 체제에서는 일본은 일하면 일할수록 수탈당하는 노예와 같은 꼴이 된다. 일본이 주도하는 「물건」 경제는 미국의 「돈」 경제에 잡아 먹히고 있지만 결국은 물건을 만드는 쪽이 이긴다. 미국은 하체가 약해 언제 쓰러질 지 모른다. 물론 그렇게 되면 세계가 대공황에 휩쓸려 일본도 쓰러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강한 것은 역시 「물건 만들기」의 기술, 능력과 땀이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대외채권부채 1조2,000억弗/부실기업인수 등 자제 日 추락 타산지석 삼아야
89년 일본은 끝모르는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경제 취약성에 대한 심각한 논의마저 묻어 버린 곳이었다. 「커진다」는 말은 「보다 세계화」라는 의미와 동일시됐고 외형적 성장은 내부의 잘못에 면죄부를 줬다.
지금의 미국도 지속되는 시장 성장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낮은 저축률이나 무역적자 확대 등 경제의 빨간 지표들은 그 명성에 묻혀 버렸다. 물론 미국은 일본이 회피했던 감량 경영 등 개혁을 80, 90년대 단행했다. 하지만 예일대의 제프리 가튼 경영대학장은 『경제 절정에 달해 있을 때는 어떤 나라든 자신들 정책에 매료돼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첫째,부유한 일본이 세계 도처에 돈을 꿔주는 동안 채무국이라는 오명의 원인이 됐던 낮은 저축률은 어떻게 됐는가. 10년전 미국인은 수입의 5.5%를 저축했으나 현재는 3.8%로 약화했다. 일본은 지금 「평생직장」에서 조기 퇴직할 우려 때문에 이전보다 더 저금에 매달린다.
둘째로 미국의 무역적자를 기억하는가. 무역적자부문은 올해 모든 기록을 깰 것이 뻔하다. 한 이유는 아시아국들이 미국 상품은 수입 안하는 대신 수출에 매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미국의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수입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아직도 외국에서 돈을 차용하고 있다.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되던 외국인 소유 미 재무부 채권(TB)규모는 90년 4,580억달러였으나 현재는 1조2,000억달러로 늘었다. 지금은 미 경제에 대한 세계적 신뢰의 표시로 해석되고 있다.
이보다 나쁜 일은 한때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한 것처럼 실패한 일본 기업들을 사들인다는 것이다. 메릴 린치가 지난해 파산한 야마이치증권의 점포망을 낚아채고 딴 미 기업들은 일본 연장자를 상대로 뮤추얼 펀드에 투자하라고 권한다. 씨티코프와 트래블러스그룹은 초대형 합병의 이유를 「세계화」라고 설명했다. 많이 듣던 말이다.
일본은행들은 증시에 의해 과평가된 자산을 담보로 돈을 대출해줬다가 「거품」이 꺼지며 부실채권을 껴안았다. 이로 인해 일 경제는 7년째 꽁꽁 얼어있 다. 워싱턴은 이제라도 해고된 일 은행원들을 초청해 청문회라도 열면 어떨지. 귀담아 들을 부분이 많을 듯 싶다.<뉴욕=윤석민 특파원>뉴욕=윤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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