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입대금 대출금리에 허리 휘청/의무예탁기간 묶여 팔지도 못해30대 재벌에 속하는 A기업 김모 과장(38)은 보너스를 받을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 숫자만 덩그러니 찍혀있을 뿐 실제로 받을 수 있는 돈은 한푼도 없다. 95년 우리사주 주식을 배정받으면서 매입대금으로 빌린돈 6,000여만원에 대한 이자로 고스란히 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김과장은 『우리사주 인수자금 대출금을 보너스에서 떼이기 때문에 과장급 이하 직원들은 보너스를 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종업원들의 애사심을 높이고 재산증식을 도와주기 위해 75년 도입된 우리사주제도가 이처럼 샐러리맨의 삶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482개 상장사의 우리사주 주식 값은 총 1조3,413억원으로 96년말에 비해 1조267억원, 43.4%나 줄었다. H화학같은 경우는 1인당 1년연봉에 해당하는 3,200만원이 사라져버렸다. 여기에 대출금리는 하늘 모르고 치솟아 우리사주 조합원들은 허리가 휠 지경이다. 중간에 팔고 싶어도 「의무예탁기간 7년」이라는 규정에 묶여 있다. 우리사주 대출금을 갚기 전에는 직장을 옮기는 것도 힘들다. 우리사주는 「샐러리맨들의 노비문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의무예탁제도는 증시활황기에 일부 조합원들이 단기매매를 통해 대규모 이익을 남기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88년 도입됐다. 당초 3년이었던 예탁기간은 93년에는 증시안정을 목적으로 7년으로 늘었다. 대주주들은 6개월이 지나면 팔수가 있지만 우리사주 조합원들은 7년동안 되팔지 못하게 돼 있어 형평에도 어긋날뿐아니라 사유재산권 침해의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다. 일부 회사들은 직원들의 재산피해가 심각해지자 「최근 주택구입이나 결혼 장례 등 예외적인 경우 1년이후 매각을 허용한다」는 조항을 편법으로 이용하는 것을 눈감아주고 있기도 하다. 모 전자회사에 다니는 이모대리(32)는 『최근 돈이 급히 필요해 친구집으로 주민등록을 옮기고 이사한 것처럼 꾸며 우리사주를 팔았다』고 말했다.
의무예탁제도는 회사의 증자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폐쇄가 결정된 제일종합금융은 증자과정에서 우리사주 조합원들이 100% 실권했다. 대주주인 신한은행은 증자참여를 거부하면서 『직원들조차 회사를 살리기 위한 증자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회사에 어떻게 돈을 내느냐』고 밝혔다. 하지만 되팔수도 없는 우리사주를 떠안았다가 퇴직금마저 날리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증자에 참여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수 밖에 없다. 올들어 증자를 실시한 한진투자증권 LG종금 중앙종금 대한종금이 모두 우리사주 실권율이 100%에 달했고 장기신용은행 하나은행 등 비교적 경영상태가 양호한 곳들도 우리사주 실권율이 80%를 넘어서 실권주 처리에 애를 먹었다.
명분도 없고 온갖 편법만을 양산해내는 현행 우리사주제도는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김준형 기자>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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