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일본경제가 미국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의 신용등급 하향조정이라는 발표 한마디에 즉각 금융불안에 휩싸여 버렸다. 등급조정의 타당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신용평가기관이 갖는 가공할 위력을 실감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한국이 지난해 돌연 외환위기에 빠져든 원인으로 정경유착의 폐해, 정부의 무능, 기업의 비효율적이며 팽창지향적 경영, 금융기관의 부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형평성 부재등이 꼽힌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한국에 S&P나 무디스 같은 권위있는 신용평가기관이 단 한 곳이라도 있었더라면 오늘같은 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환위기의 발화점이 된 한보사태만 하더라도 신용평가기관이 이 부실덩어리 회사에 마땅히 D(Default)등급을 부여했더라면 아무리 정치권이 무리한 대출압력을 행사하더라도 은행이 이를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출을 해줄 수 없는 객관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또 기업의 무리한 성장위주의 경영도 신용평가기관들이 지속적으로 기업의 부채비율등 내실을 감독하고 그에 맞게 신용등급을 적절히 조정했다면 무리한 과속운행에 고삐가 잡혔을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 금융기관들은 신용평가를 객관적인 대출의 잣대로 삼기보다는 담보나 보증 위주의 안이한 대출관행을 유지해 왔다. 또 금융대출을 대기업이 독점하고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은 담보 제공능력이 없을 경우 아무리 사업내용이 좋더라도 대출을 받기 어려운 게 한국의 금융현실이다. 지금도 정부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리라고 입이 닳도록 강조하고 있지만 일부 금융기관들은 오히려 기존 대출금조차 회수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 역시 신용평가기관의 부재로 상당부분 설명할 수 있다. 어떤 기업에게 돈을 빌려주어야 떼이지않을지 가릴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대출을 동결해버렸기 때문이다. 신용평가기관이 기업들에 대해 객관적인 신용평가 정보를 제공한다면 은행은 굳이 담보를 요구하지 않고라도 신용등급에 의한 차별화한 이자율 적용등을 통해 신용대출을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유망 중소기업들의 앞선 기술력이나 향후 수익성에 근거를 둔 시장개척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다면 기업가들 입장에서도 소신껏 기업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신용평가사들의 비즈니스는 말 그대로 「신용」그 자체이다. 투자가에게 적기에 정확한 신용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투자의 판단근거를 제공하는 일이 신용평가기관의 생명이다. 따라서 이들 기관이 신용평가의 「신뢰성」을 투자자로부터 의심받게 된다면 그야말로 존립의 이유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신용평가 기관들은 평가의 「독립성」, 「정확성」, 그리고 「시기 적절함」을 요체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몇개의 신용평가 기관들이 있다. 한보나 기아의 예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기관들이 위의 세가지중 어느 것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국내 투자가들 사이에도 이들이 내린 신용등급은 아무런 신뢰를 못 받고 있다. 있으나마나한 신용평가기관 열개를 가지고 있는 것 보다도, 국제적으로 신인도를 인정 받을 수 있는 신용평가기관 한두 곳을 국내에 적극 유치해서 국내외 투자가들이 안심하고 결정을 내릴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위해 최근 정부 모든 부처가 발벗고 나서 동분서주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외국 투자가들에게는 한국기업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들여다 볼수 있는 신용평가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더욱 절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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