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돌을갈아 물감으로 쓰고 기왓장·사금파리도 활용·한진만안면도 황토 침전시켜 붉은빛 얻어 채색실험
·김보중나뭇가지 캔버스 붙이거나 숲그림 생나무틀에 걸기도
자연으로 자연을 표현한다. 그림의 대상이었던 자연이 이제 구현의 방식으로 새로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자연을 그린 그림 속에서 색을 발하는 것은 돌가루나 흙이며 나무그림을 받쳐주는 것은 부러진 나뭇가지이다. 어려운 말로 설명하면 「질료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한 것이다. 이런 경향은 최근 유럽화단의 환경주의회화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새로운 한국적 회화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경기 양평군 용문사 근처에 사는 김성호(44)씨는 캔버스와 물감이 비싸 애먹는다는 동료들의 걱정이 남의 얘기만 같다. 그는 주운 돌을 갈아 여기에 아교를 섞어 물감을 대신한다. 붉은 벼룻돌에서는 팥죽색을 얻는다. 차돌은 희나 검으나 갈아 놓으면 흰 색이 난다. 입자가 고울수록 채도와 명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쓰임새에 따라 갈기를 달리 한다. 돌만 쓰는 게 아니다. 기왓장에선 은은한 회색이 우러나오고 토분은 구운 정도에 따라 밤색도 주홍색도 난다. 오래된 사금파리에서는 연두색을 얻는다.
『물감 중 가장 좋은 것은 자연』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10년전. 홍익대 동양화과 시절, 유약을 구워 만든 석채나 백토에 물을 들여 만든 일본식 수간분채는 값이 비싸고 자연의 맛을 느낄 수도 없었다. 그가 호사를 부리는 것이 있다면 바탕을 종이로 배접한 비단으로 쓰는 것인데 이 역시 중국에 있는 친척들이 많은 양을 한꺼번에 보내주기 때문에 수입캔버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자연안료는 채도가 낮은 것이 흠이지만 그는 결점을 장점으로 바꾸었다. 데생력과 어우러진 은은한 색감, 여기에 더해진 날카로운 스크래치 자국은 자연풍경을 사색의 공간으로 치환하는 힘을 발휘한다. 17∼30일 갤러리사비나 (02)7364371
한진만(홍익대 동양화과 교수)씨 역시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서 가져온 황토를 침전시켜 황토빛과 붉은 빛을 내고 있다. 수묵으로 진경산수를 그려온 작가는 이번에 채색기법을 도입하면서 흙을 이용했다. 조심스런 실험정신이 엿보인다. 18∼27일 갤러리상(02)7300030
숲을 많이 그려 「숲의 작가」로 불리는 김보중씨는 성(性), 권력등 인간의 갈등구조를 다스리는 치유자로서의 나무와 자연을 표현해온 작가. 최근 그는 입체나 부조작품에 자연을 끌어들였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캔버스에 붙이거나 나뭇가지 틀에 캔버스를 입히는 방식을 통해 자연을 드러내고 있다. 그에게도 자연은 작업의 주제이자 주제의 구현자인 셈이다. 28일∼5월10일 경기 수원 갤러리그림시(0331)2517804<박은주 기자>박은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