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경주여행중 불국사 앞 여관에 투숙했는데 귀청을 찢는 음악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소음의 진원지를 찾아나서니 이웃 여관 마당이었다. 벽에 달린 확성기에서 터져나오는 음악이 온 여관촌을 뒤흔드는 가운데 춤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학여행 온 어린 학생 50여명이 손뼉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여학생 6명이 앞에 나가 춤을 추고 있었다. 빠른 리듬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춤솜씨가 TV 쇼의 연예인들 못지 않았다.현관쪽 벽면에서 명멸하는 오색 조명등이 카바레 분위기를 연상시켰다. 여관 종업원에게 물으니 그런 시설이 없는 여관에는 손님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자도 여관 종업원이었다. 그러고 보니 모든 여관에 비슷한 공간이 있고 현관 벽면마다 조명시설이 있었다.
한 학생에게 어느 중학교 학생들이냐고 물으니 한 지방도시 초등학교 6학년이라 했다. 더욱 놀란 것은 그들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런 시간을 갖기 원하고, 출연자들은 그 날에 대비해 몇달씩 연습을 한다는 말이었다. 초등학생도 물론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들리는 말은 공부하라는 말 뿐이다. 방과후에도 피아노 레슨 받으랴, 영어과외공부하랴, 쉴 틈이 없으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을 어린이답게 발산하는 방법도 있을텐데….
이날 벚꽃이 활짝 핀 불국사 앞 소공원은 술 취해 노래하고 춤추는 행락객들로 붐볐다. 취흥을 못 다 푼 사람들은 관광버스 안에서도 판을 벌였다. 이런 어른들에게서 아이들이 보고 배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위지(魏志) 부여전에는 한민족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즐기는 민족으로 묘사돼 있다. 지금도 중국인 일본인들은 우리를 춤과 노래와 축구를 즐기는 민족이라고 평한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놀기를 즐겨온 민족이긴하지만, 이젠 놀이문화도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품위를 생각하는 절제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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