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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소비’ 필요하다(國難을 넘자: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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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소비’ 필요하다(國難을 넘자:20)

입력
1998.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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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추종소비 절제/자기 소득수준 맞게/지도층 모범 보여야두 아들을 둔 회사원 강모(35)씨는 지난 일요일 저녁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TV를 보게 됐다. 마침 TV에는 여자 코미디언이 등장, 『IMF시대에는 무조건 안먹고 안써야 한다』며 허리띠를 졸라매다가 쓰러지면서 「극단적 절제는 금물」이라는 공익광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같은 방송사 9시뉴스는 고속도로에 길게 늘어선 차량을 비추며 『시민들이 벌써 IMF를 잊어버리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며 과소비를 질타했다.

강씨는 『쓸 돈도 없지만 IMF시대라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소비를 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고 불평했다.

그렇다면 합리적 소비란 무엇이고 또 그 구체적 기준은 뭘까. 현대경제사회연구원 황원일(黃元一·31)연구원은 『한국적 소비행태의 특징이자 구조적 문제는 「거품 소비」와 「추종(追從) 소비」로 요약된다』며 『한국인들의 소비개혁도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인의 「거품 소비」는 세계 최고수준. 일본의 경우 96년말 현재 400ℓ이상 대형 냉장고를 보유한 가구가 전체의 23%인 반면 한국은 55.9%에 달한다. 또 전체 차량중 배기량 1,000㏄이하 소형차 비중도 한국은 일본(22.6%)의 7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3.9%에 불과하다.

부유층의 소비행태를 무조건 답습하려는 「추종 소비」도 심각하다. 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서민중 55.2%는 상류층이 이용하는 고급·호화음식점에서 외식을 한 경험이 있고 이에 따라 고급요리의 대명사인 바닷가재 수입액은 95년 600만달러, 96년 1,300만달러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거품소비, 추종소비를 극복하고 싶습니까?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왕자를 벤치마킹하면 됩니다』 시중은행의 K상무는 대우, 현대그룹에 1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한국인을 놀라게 만든 아랍의 거부를 의외로 모범적 소비사례로 추천했다.

왈리드왕자는 한국을 떠나기 바로 전날인 지난달 17일 신라호텔 프랑스 식당인 「라 컨티넨털(La Continental)」을 통째로 전세내 수행원 15명과 함께 한국 전통무용을 구경하며 밤새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왈리드왕자가 저녁식사로 소비한 돈은 약 20억원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과소비라고 욕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돈을 써도 괜찮은 부자이기도 하지만 그가 쓴 돈은 협상의 피로를 잊고 새로운 출발을 다지는 「투자형 소비」였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왈리드왕자처럼 ▲소득수준에 걸맞으면서도 ▲미래지향적인 투자형 소비가 「합리소비」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소비개혁의 1차대상은 ▲갖가지 명목으로 후원금을 받아 돈을 펑펑 써대는 정치인들 ▲「접대」를 빙자, 공금으로 고급룸살롱에서 흥청대는 회사간부 ▲쇼핑을 취미로 삼는 유한(有閑) 부인 등이라는게 K상무의 결론이다.

조선시대 몇 안되는 명군(名君)으로 평가받는 영조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비단 옷을 벗고 삼베 옷을 입었다.

당시 사회전반에 만연한 의복사치를 「최고의 오피니언 리더」인 임금이 나서 척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실제로 이후 사대부와 백성들의 소비행태는 검소해졌다.

사회지도층의 소비행태가 서민들에게 거울로 비쳐지는 것은 200여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다. 온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사회지도층(혹은 부유층)의 뼈를 깎는 소비개혁이 선행되어야 할 때이다.<조철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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