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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이 휘청거린다/IMF·감봉·고용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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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이 휘청거린다/IMF·감봉·고용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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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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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과 적금을 해약하고 아이들 학원수강을 끊고 술자리는 피해 다니지만 밀려드는 좌절과 분노보험과 적금을 해약하고 자가용 출퇴근도 포기한지 오래다. 아이들 교육비를 줄인 마당에 2,3차로 이어지는 술자리는 꿈도 꾸지 못한다. 아내에게 생활비를 아껴야 한다고 말해놓고 속으로는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아프다.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탈출구를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좌절감이 마음 깊은 곳을 누른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에게 더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지만 달리 풀 길도 없다. 분노와 좌절감은 마음속에서 커져만 간다. 지금 우리 중산층의 모습은 대체로 이렇다.

대기업 L사에 다니는 김인형(36·가명·서울 양천구)씨. 그는 최근 통계표본(대우경제연구소)에서 파악된 요즘의 중산층이라 할만하다. 연봉 2,500만원을 받고 25평형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으며 소형 승용차를 갖고 있다. 2,000만원의 은행부채가 있지만 올 12월에 만기가 되는 2,000만원짜리 적금이 있다. 유치원에 다니는 1남1녀에 아내는 전업주부이다.

김씨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는다. 『예전에는 내 스스로가 우리 사회의 상위 40%안에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하위 80%에 속한 것 같습니다.앞서 나가는 친구들을 볼때면 나도 곧 저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희망도 버렸습니다』 그의 말들에는 심한 좌절감이 짙게 배어있다.

최근 한국 소비자보호원이 조사 발표한 「97년 한국의 소비생활지표」에 따르면 자신을 하류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3년전에 비해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94년 11.8%가 스스로를 「하류층」으로 간주했으나 지난해 조사에서는 이집단이 23.7%로 늘었다. 반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81.3%에서 71.1%로 줄었다. 중산층 8명중 1명이 자신의 눈높이를 하류층으로 낮춘 셈이다. 조사시점은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밀려오기 전이었다. 지금 당장 조사를 해본다면 결과는 더 충격적일 것이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양산되는 실직자와 파산 직전의 중소기업인, 장기 불황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기 때문이다.

샐러리맨 중산층에게 닥친 가장 큰 고통은 감봉과 고금리다. 김씨의 경우 총액기준으로 이미 10%가 감봉됐다. 상여금의 대폭 삭감도 눈앞의 일이다. 아파트 전세를 얻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 2,000만원의 원리금도 월 30만원대에서 50여만원으로 뛰어올라 김씨를 괴롭히고 있다. 그래도 김씨는 『은행 대출 5,000만∼6,000만원을 안고 아파트를 분양받은 친구들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감수하고 주택마련에 나섰다가 이중, 삼중의 손해를 보고 있다. 금융자산이 많은 상류층과는 달리 「내집」 한채가 고작인 중산층에게 부동산 가치하락은 곧 자산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 중산층이 모여사는 신도시 등 아파트단지에서 「급매물」이 홍수를 이루고 전세값이 1,000만∼2,000만원씩 하락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김씨는 『아예 내집 마련은 포기했고 적금을 타서 목돈이 생기면 빚이나 빨리 갚아야 겠다』고 말했다.

소득의 감소와 고정지출의 증가로 절약은 필수가 됐다. 『아이들의 유치원은 어쩔 수 없지만 한 곳씩 더 보내던 학원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말하는 김씨의 얼굴은 어둡기만 하다. 자가용 승용차는 주말에만, 그것도 가족모임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때 쓰기로 결정했고 부하 직원들과의 술자리도 가능하면 집에 데려와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다. 자동차 보험금이 부담이 됐지만 『차가 없으면 노부모를 제대로 모실 수 없어 팔 수는 없다』는 것이 김씨의 처지이다. 물론 부모님 용돈도 절반으로 줄일 수 밖에 없었다.

주위의 지인들이 하나 둘씩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보면 분노가 일기도 한다. 『중소기업을 하는 한 친구에게 여러 친구들과 함께 1,000만원씩 대출 보증을 서 줬어요. 그런데 친구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모두가 불안감을 느끼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요. 사업하는 친구를 겉으로 무척 걱정해주면서도 속으로는 내게 불똥이 떨어질까 염려들을 하는 것이지요. 이런 내 자신에 대해 화가 치밀기도 합니다』

「시장경제체제에서 계층간 마찰을 줄여 사회를 원활하게 유지해주는 것이 중산층의 핵심기능」이라는 것은 재문의 여지가 없다. 중산층의 완충기능이 없어진다면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게 드러나게 되고 각종 경제범죄등이 급증할 것은 뻔하다. 또 중산층의 몰락으로 사회계층의 양극화현상이 계속될 경우 사회불만이 거세지고 이런 갈등이 파괴적으로 표출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극단적 사례는 바로 인도네시아이다.

김씨와 같은 중산층은 잘못된 분배정책이 중산층을 엷어지게 한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연금의 문제가 한 예다. 봉급생활자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국민연금 징수액은 월 3.25% 인상되지만 수령액은 반대로 대폭 줄었다. 이에비해 금융소득이 4,000만원이상인 사람에게 최고 40%를 과세하도록 돼있던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유보되고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세금인상은 백지화했다. 전문가들은 『간접세 위주의 조세체계를 구조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고소득 자영업자나 전문직에 대한 부가세, 소득세를 올리는 등의 조치가 있어야 중산층의 상대적인 박탈감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이상연 기자>

◎한국의 중산층/연 2,500만원 수입… 700만원 빚… 월 150만원 지출

중산층이란 어떤 계층을 말할까.

경제적으로 사회의 중간 소득계층을 뜻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교육 직업 교양 의식수준 등 다른 지표도 중산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우리나라에는 객관적인 기준에 못 미쳐도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중산층의 생활 수준을 뽑아보자. 지난 연말에 발표된 가구소비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균적인 우리나라의 가구는 1년에 2,500만원 가량을 번다. 1,800여만원의 저축을 하고 있고, 716만원 정도 부채를 지고 있다. 한달에 소비하는 돈은 149만6,000원. 이중 외식비로 11만5,000원, 취학 자녀의 교육비로 12만3,400원을 지출한다. 두 집당 한 집 꼴로 자기 집을 갖고 있고, 승용차를 굴린다. 맞벌이를 하는 가구는 네 집 당 한집 정도다.

최근 「한국 중산층 연구」라는 책을 펴낸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김영모 교수. 그는 이 책에서 자영상공업자, 자영농어민 등 소규모 생산·소유권자인 「구중산층」이 몰락하면서 전문직 사무직 서비스직 등에 종사하는 봉급생활자 화이트칼라가 「신중산층」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신중산층」 화이트칼라는 교육, 기술 등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월급 외에 다른 수입원을 지닌 경우가 많다. 재산 평균치는 동산 3,300만원, 부동산 1억4,100만원 수준. 50.3%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60% 가량은 대학을 졸업했다. 또 신중산층은 동질적인 성격이 강해 독립된 계급적 성격을 띠는 경향도 크다.

김교수는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중산층의 성향도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며 『중산층의 새로운 주류로 등장한 화이트칼라 계층이 소득 감소로 인한 경제 수준 하락, 권력 하락 등 전반적인 위상 약화 현상을 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많은 화이트칼라들이 외국 자본에 고용되면서 자주성, 사회·정치적 개혁성 등이 약해지고 이기적 성향이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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