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속 기근’ 돈이 안돈다/금융권 76조엔 부실채권/美·英 보다 10년 늦은 빅뱅/우량기업까지 ‘돈脈경화’주식 시가 총액이 1,400억달러에 달하는 초거대 종합금융회사 씨티그룹이 올 가을 탄생한다는 소식이 날아든 6일 저녁 일본의 은행들은 일제히 비명을 내질렀다. 도쿄미쓰비시(東京三菱)은행 기시 사토루(岸曉) 총재를 비롯한 주요 은행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지금까지 생각하지도 않았던 경쟁상대가 나타났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96년 4월 도쿄미쓰비시(東京三菱)은행이 세계 최대은행으로 탄생할 때만 해도 세계 10대 은행 가운데 6석을 차지했던 일본의 은행들. 그러나 올 가을이면 도쿄미쓰비시은행만이 7위에 남을 전망이다. 주가 하락과 엔저로 달러화 표시 자본총액이 반감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발빠른 합병을 따라가지 못한 「지각」도 큰 요인이다.
1일 개정 외환법 시행으로 시작돼 2001년 본궤도에 오르는 일본판 빅뱅(금융개혁)은 미국과 영국 등에 비해 10년 이상 늦다. 이제 겨우 금융지주회사가 해금된 단계이다. 은행과 보험·증권의 벽이 완전히 허물어져도 일본 금융기관의 관행으로 보아 발빠른 합병이 어려울 것이란 비관론이 벌써 무성하다. 일본 금융기관의 체력이 떨어진 것은 상대적인 체격 왜소화 때문이 아니다. 76조엔이 넘는 부실 채권을 안아 체질이 허약해 진 것이 보다 큰 원인이다.
도시은행과 장기신용은행, 신탁은행 등 19개 주요은행이 3월말 결산에서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 8%를 일제히 충족하리라는 전망에 대해 메릴린치 증권 수석 분석가인 야마다 요시노부(山田能伸)씨는 『짙은 화장으로 흉터를 가렸다』고 논평했다. 주가 하락에 따른 평가손이 반영되지 않는 원가법으로 보유주식을 평가하고, 토지재평가를 통해 평가익을 반영하는 한편 1차로 2조엔 가까이 지원된 공적자금을 자본에 편입했기 때문이다.
「맨얼굴」로 승부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이 「자산 압축」을 통해 체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3월말 결산만 넘기면 풀릴 것이라던 대출 경색이 4월에도 이어지고 좀체로 풀릴 기미가 없어 「은행의 장롱 예금」이란 말이 일상어가 돼가고 있다. 우량기업까지 대출 경색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음은 기업의 보통사채 발행이 크게 늘고 있는 데서 확인된다.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9,000억엔을 돌파한 이래 1, 2월에도 잇달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경제의 「피」인 돈이 돌지 않는 금융불황이 소비 불황과 함께 일본 경제의 목을 조이고 있는 것이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자금 바닥난 中企 대출은 별따기/더 까다로워진 대출조건/자격있어도 은행서 외면
도쿄(東京) 고토(江東)구 오지마(大島)에서 작은 철공소를 운영하고 있는 안즈 쓰네타카(案主常尙·58)씨. 5명의 직공을 데리고 주택회사에 알루미늄 창틀 등을 납품하는 그는 운영자금이 바닥나 절반으로 줄어든 주문을 맞추기에도 힘이 벅차다.
지난해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린 3,900만엔 가운데 2,800만엔을 갚아 그만큼 「대출 자격」이 있는데도 거래은행 담당자가 아예 대출상담을 피하고 있다. 『주변에 손을 벌릴 곳도 없어 20일까지 기다려 보고도 안되면 대금업자의 고리채를 쓸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2월 26일 자금난에 시달린 중소기업 사장 3명이 동반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대장성이 3월말에 끝낸 실태조사 결과 주요 19개 은행의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이 일제히 전년도보다 준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약 40%가 『지난해보다 대출조건이 까다로워졌다』고 응답했고 나머지 60% 가운데 절반 이상은 『대출조건은 변하지 않았으나 서비스가 형편없어졌다』고 응답했다.
한편 종업원 30명 미만의 소기업은 55.7%가 매출액이 10% 이상 줄었다고 응답해 87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악을 기록했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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