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부진·대식증·폭식 등 증상/우울증·약물남용 동반하고 심하면 생명까지 잃을수도/행동치료·내과검사 필요●K(18)양은 식사때마다 부모와 전쟁을 치른다. 억지로 밥을 먹이려는 부모와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K양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다. K양의 체격은 키 163㎝, 체중 36㎏으로 평균체중에 훨씬 미달한다. 날씬하다 못해 뼈만 앙상할 정도이다. 그런데도 『아랫배가 많이 나와 살을 빼야 한다』며 죽 두 그릇으로 하루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지나치다 싶게 운동도 열심이다. 당연히 갈수록 체중이 줄어들지만 그는 만족할 줄을 모른다.
●회사원 L(25)양은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처럼 체중계에 올라간다. 그리곤 전날 저녁 주체할 수 없이 많은 음식을 먹은 뒤 변기에 억지로 토해낸 기억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친다. 매일 많이 먹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지만 공염불이 되기 일쑤다. 그는 요즘도 폭식과 토하기를 반복하며 음식에 의해 자신이 통제당하고 있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
●주부 M(35)씨는 모든 문제를 음식으로 해결한다. 그는 속이 든든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동안 수없이 다이어트를 했으나 폭식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160㎝의 중키에 체중은 70㎏을 넘었다. 요즘은 심한 우울증도 생겨 사람 만나기가 두렵기만 하다.
이상은 위험할 정도로 말랐는데도 이의 심각성을 부인하는 신경성 식욕부진증, 살찌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해 폭식후 제거행동(구토, 이뇨제, 설사제, 심한운동등)을 반복하는 신경성 대식증, 폭식만 반복하는 폭식장애등 다양한 식사장애 사례들이다. 80년대 이후 서구사회에선 아름다움과 날씬함이 여성들의 성공기준으로 강조되면서 식사장애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미의 기준과 현실 사이의 심각한 괴리 때문이다. 현대여성들은 기름진 음식을 많이 접하는 반면 자동차나 리모트 컨트롤등 기술의 발달로 활동량이 많이 줄었다. 실제로 키와 체중이 늘어나는등 체형이 상당히 커졌다. 하지만 사회분위기는 과거보다 더욱 날씬한 여성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발전과 서구화의 영향으로 체중이나 체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식사장애환자가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조사결과 국내 여대생의 유병률은 신경성 식욕부진증이 0.7%, 신경성 대식증이 0.8%였다.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고(高)위험군에선 신경성 식욕부진증이 0.55∼5.7%, 신경성 대식증이 10.4∼18.6%나 됐다. 선진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식사장애는 생명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내과적 문제와 우울증, 알코올중독 및 약물남용, 불안 및 성격장애등을 동반한다. 사회적 고립, 대인관계의 어려움, 가족갈등과 같은 문제도 초래한다. 주로 청소년기와 초기 성인기에 발병하므로 성장에 심각한 장애를 줄 수도 있다. 이 질환은 혼자서 조절이 어렵고 만성화하기 쉬워 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초기에 치료할수록 결과가 좋다.
식사장애의 바탕에는 자기 불만족, 자존심 저하, 대인관계나 가족간의 갈등과 같은 문제가 있다. 각종 정신적 내과적 증상도 나타난다. 따라서 행동치료, 내과검사 및 치료, 영양관리, 인지행동치료, 개인정신치료, 가족치료등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식사장애를 예방하려면 자신의 몸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어린시절부터 외모에 대해 놀리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교육하고, 사람을 평가할 때 외모 아닌 다른 특징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도록 하자. 또 음식을 칭찬이나 벌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고, 자신의 신체부위를 외형만이 아닌 기능의 의미도 생각해 사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규칙적이고 균형된 식사습관을 키워주는 것도 중요하다.<이영호 인제대의대 교수·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이영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