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잘 돌아가던 지난해까지만 해도 식당들은 음식값 올리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느 날 메뉴판에 「특설렁탕」이라 써붙이고 종전 보다 500∼1,000원 정도 올린 값을 나란히 적는다. 처음 며칠간 손님들은 「특」은 뭐고 「보통」은 뭐냐며 시비걸지만 보름쯤 지나면 대부분 특설렁탕을 찾게 마련이다.그때 가서도 보통을 찾는 고지식한 손님에겐 퉁명스런 대꾸로 맞선다. 며칠후 메뉴판에서 슬쩍 보통을 지우면 값올리기 작전은 성공리에 끝난다. 시시콜콜 따지기 싫어하는, 배포 큰 우리 국민들의 심성을 파고든 상술이다.
몇년전 국내 유명백화점들이 「사기세일」을 벌이다 혼쭐이 난 적이 있었다. 한 백화점이 5만원짜리 옷의 정가를 10만원으로 고친 후 「50% 할인」이라며 5만원이나 깎아주는 척 했더니 날개돋친듯 팔리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경쟁사들도 너나없이 같은 전략으로 맞서다 덜미를 잡힌 것이 사기세일 해프닝의 전모다.
비싼 게 좋다는 상식의 허(虛)를 찌른 이같은 고가(高價)전략은 그동안 무척 잘 먹혔다. 모 회사의 우유는 다른 경쟁업체보다 2배 가까이 비싼 데도 신기하리만큼 잘 팔렸다. 이 회사가 국내 시판우유의 수준을 한단계 올렸다는 평가도 있지만, 지나친 광고공세와 그에 따른 원가부담 때문에 품질이상 값이 비싸다는 점도 부인키 어렵다.
따지고 보면 고가전략이 통했다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 폭이 그만큼 제한돼 있었다는 반증이다. 설렁탕값 올리기는 메뉴판을 이용한 경쟁제한의 흔적이 짙고 사기세일은 속임수가 가미된 가격담합이어서 둘다 자유경쟁과는 거리가 멀다. 다양한 품질과 다양한 가격의 상품이 공존하는 시장이 작동한다면 소비자들이 구태여 비싼 최고급품만 고집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한다. 그러나 다홍치마는 비싼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 간단한 사실을 생활 속에서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IMF시대를 살아가는 「똑똑한 소비」이며, 자유시장 경제가 확실히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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