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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은행 서초남지점장 이필영(여성의 새 길을 연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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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은행 서초남지점장 이필영(여성의 새 길을 연다:6)

입력
1998.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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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 입는 은행지점장/“첫인상서 신뢰감 얻기 위해 입어요” 철저한 프로/여성대리 1호… 은행의 꽃 영업부 섭렵… 최고위 현역 여행원/“일과 공부 즐기다보니 아직 미혼이에요”한국상업은행 서초남지점장 이필영(53)씨는 93년 지점장(영동출장소)으로 첫 발령을 받은 후부터 「유니폼」을 입기 시작했다. 흰색 셔츠와 감색 투피스. 지점장에게 유니폼을 입으라고 했을리는 만무한데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그는 이 옷만 입는다. 『남성에 대한 신뢰감은 양복에서 결정된다. 여성으로서 지점장을 맡으면서 첫 인상부터 고객의 신뢰감을 쌓기 위해 시작했다』 현직 여성은행원중 최고위직인 1급 지점장에 이르기 위해 그는 이렇게 기존통념 속에 스스로를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왔다.

이씨는 국내은행의 첫 여성 대리시험 합격자(76년)로 출발해 은행업무의 꽃인 영업부 과장, 차장을 거쳤다. 국내 첫 여성지점장은 아니지만 여성은행원의 지위향상을 위해 「여성은행원」 제도 폐지운동을 벌인 1세대다. 이씨는 『상업은행에서 처음으로 여행원에게 대리 진급시험 응시자격을 주었는데 합격자 300명 중 유일한 여성이어서 전국에서 격려편지를 받았다』며 『후배 여행원들의 선례가 된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무거웠고 더욱 열심히 해야 했다』고 말한다. 이씨가 지점장이 된 후 여자후배에게 여신업무나 창구계장을 맡기는 등 「후배 키우기」를 한 것도 이때의 격려를 마음에 새겼기 때문이다.

경북 구미에서 3자매의 막내로 태어난 이씨는 집안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워지자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김천 성의여종고를 선택해 은행원의 길을 걷게 됐다. 상업은행 대구지점 창구에서 일하던 그는 본점 인사담당자에게 『대학공부를 위해 서울근무를 하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다행히 70년 서울 발령을 받아 휴학했던 경기대 야간 무역학과를 무사히 졸업했다.

자기 주장을 확실하게 하는 이씨의 장기가 다시 발휘된 것은 92년 영국 연수때다. 본점 영업부 차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결근 월차 생리휴가 한 번 없이 근무했으니 안식년을 달라』고 인사담당상무에게 요청했다. 전례가 없었지만 『간부로서 견문을 넓히는 것이 장기적으로 은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씨의 설득이 받아들여졌다. 물론 은행에 그만큼 기여한 것이 있었다. 이씨는 84년 을지로지점 대리 시절 1년 예금수탁고 40억원으로 여성금융인으로는 최초로 재무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6개월간 케임브리지대학 어학연수를 마친 뒤 이씨는 상업은행 첫 여성지점장(영동출장소장)으로 발령받았다. 현재 거의 모든 은행이 운용하고 있는 고객상담코너는 그가 이때 고안한 것이다. 고객들이 비밀이 보장되는 안내를 받고 싶어 한다는데 착안, 부스를 따로 마련해 상담을 해주는 「프라이비트 코너」를 만들었다.

남역삼 동여의도 서초남 지점을 거친 베테랑 지점장으로 가장 중시하는 일은 상품에 대한 철저한 지식을 갖추도록 직원을 교육하는 것. 『상담자의 처지에 맞춘 재테크전략을 제시해야 제대로 된 금융서비스』 라는 이씨는 지점장 부임 한 두달간은 외부 섭외도 마다 하고 직원교육에 매달린다.

이씨는 고객섭외를 반드시 점심시간에 한다. 『굳이 술자리를 가지지 않아도 섭외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가 맡고 있는 서초남지점은 상업은행 전국 지점 508곳중 상위 30개 대형점에 들어 있다. 여성지점장이 있는 점포라서 특별히 다른 점은 없다. 이씨는 『경영에는 왕도가 없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개인 법인의 신용조사를 하려고 직접 찾아가 본다』고 말한다. 여성지점장이라서 유리한 점은 40∼50대 여성 고객들이 많다는 정도다.

인기부서만 거치다 보니 질시도 심했다. 『영업부에 있던 85년 외환사고가 났을 때 「이필영도 이제 끝났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고객의 도움으로 해명할 수 있었고 이후로 고객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사동(강남구)지점 차장시절 아랫사람인 남자직원이 연장자여서 어색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은행원사회는 위계질서를 가장 기본으로 하므로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여자이기에 업무에 등한한 여성후배에게는 더 단호하게 대했다』고 이씨는 말한다.

일이 즐거워 아직 미혼이라는 그는 바쁜 지점장 생활에도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사회정책 전공)을 2월에 졸업,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퇴임후에는 유아교육이나 복지업무에 관한 일을 해볼 생각이다. 그러나 아직은 현직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여성후배들이 쑥쑥 클 수 있도록 앞길을 열어주고 싶다』고 이씨는 말하고 있다.

□약력

45년 경북 구미 출생

64년 김천 성의여종고 졸

65년 한국상업은행 입행

73년 경기대 무역학과 졸

76년 상은 제1고시(초급관리자시험) 홍일점 합격

78∼81년 종로지점 대리

84년 저축의 날 재무부장관 표창

87∼89년 신사동지점 차장

91∼93년 본점 영업1부 차장

93∼95년 전문직여성클럽 한국연맹 부회장금융기관여성책임자회 회장

94∼97년 남역삼·동여의도 지점장

98년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졸

현재 초남지점장

◎은행지점장의 역할과 지위/예금고 최고 수조원 주무르는 ‘큰손’

은행원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해보고 싶어하는 지점장은 어떤 자리일까. 시중 은행 25개(지방 8개 포함)의 지점은 5,488개. 이중 여성지점장은 24명으로 0.43%에 불과하다. 이들 중 10명이 규모가 적은 출장소를 담당한다. 지점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은 1∼3급까지로 대형 점포의 경우 1급이 맡지만 작은 출장소는 3급 차장이 맡기도한다. 6대 시중 은행인 상업은행의 경우 출장소는 예금고가 100억∼150억원대인 반면 지점은 200억원부터 수조원대에 이를만큼 차이가 크다. 지점장의 업무는 예금 조달과 대출,외환관리. 지점마다 액수는 다르지만 지점장이 결재할 수 있는 대출 규모는 개인이 3,000만∼5,000만원대 법인은 1억∼3억대로 매일 수억원의 돈을 주무르는 「큰 손」이다.

때문에 대출과 관련해 로비도 많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점에는 대출 관련 청탁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 은행 관계자들의 말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의 영향으로 예금 수탁고라는 외형 키우기에서 수익 우선의 시장 경제원리로 무게 중심이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신용 관리 우선이라는 원칙을 중시하는 책임자들의 설 자리가 넓어지는 추세. 금융기관 여성책임자회 부회장 김선주씨는 『신용관리를 꼼꼼하게 하는 여성들이 앞으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시대별로 인기있는 점포는 다르다. 70년대만 해도 시중은행의 본점이 몰려있는 서울 중구 소공동 남대문 종로등이 최상급 대형 점포였으나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80년대 이후 강남 지역에 최상급 점포가 늘었다. 이필영씨는 『상업은행만 해도 30대 대형 지점중 20여개가 강남에 있을 정도로 바뀌었다』고 들려준다.<노향란 기자>

◎국내 여성금융인 얼마나 되나/3만9,040명… 대리급 이상은 1,381명뿐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에 따르면 우리나라 은행원의 숫자는 97년 7월말 현재 10만 6,105명(파트타임 포함). 이 가운데 여성이 3만 9,040명(36.8%). 여성중에 대리급(4급) 이상은 1,381명(3.53%)이다. 이 연맹 김영주(43) 여성국장은 『시중 은행들의 구조조정이 계속 진행중이어서 4월 현재 대리급 이상 여성 책임자는 이보다 적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고위직인 1급은 단 2명이다. 한국상업은행 서초남 지점장 이필영(53)씨와 조흥은행 이화여대 출장소장 이한순(52)씨가 그들이다. 지난해까지 5명이었던 은행권의 1급 여성금융인은 올해 초 대규모 명예퇴직 바람으로 반이상 줄었다. 최초의 여성지점장은 올 초 조흥은행을 퇴직한 장도송(62)씨로 82년 반포남 출장소장을 맡았다. 91년 조흥은행 이화여대 출장소장을 맡은 정화자(57)씨가 2호 지점장. 92년 채춘자(57·전 한일은행 신월동 지점장) 93년 김혜자(62·전 서울은행 개포동 지점장)씨등이 그 뒤를 이었고 94년 이필영, 이한순씨가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지점장(출장소장 포함)으로 있는 여성 책임자는 24명이다.

시중 은행중 대리급 이상 여성 책임자가 가장 많은 곳은 한국상업은행으로 200명. 가장 적은 곳은 대동은행(3명)이며 한국은행이 7명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한국은행에는 차장급(3급)이 최고위직이다.

금융기관 여성책임자회 김선주(45·제일은행 반포지점 영업점장) 부회장은 『76년 대리 승진 시험이 여성 은행원에 개방된 지 32년이 지나 책임자수가 늘어났지만 여성 이사나 본부장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며 『고객 서비스가 중요한 은행 업무에는 여성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장점으로 작용하므로 더 많은 여성들이 진출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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