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4일 밤 10시. 야심한 시간인데도 의원들이 국회에 속속 모여 들었다. 통합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하기 위해 본회의가 열린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역구에서 연락을 받고 급히 올라 온 의원도 있었고 중요한 약속을 취소한 의원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의원들은 이날이 제190회 임시국회 마지막 날이라는 점을 의식, 『선거법 개정협상이 극적으로 타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며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2시간 가까이 최종 타결 소식을 기다리던 의원들은 「한치 앞을 내다 보지 못한」 성급한 기대를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다 된 것처럼 보이던 협상이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고 본회의는 「별다른 해명 없이」 자동 유회됐다.의원들이 6·4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선거법 개정협상에 있어「제앞가림도 못하는」 한심한 상태로 빠져 든 이유는 바로 「당리당략(黨利黨略)」 때문이다. 이번 선거법 개정협상에서 여야는 협상에 임하는 원칙을 정하지 못한채 표류했다. 지방의원 선거구제 변경, 기초자치 단체장 임명제, 공직사퇴시한 단축등은 지방자치 구현에 있어서 하나하나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안들이다. 그러나 여야는 이처럼 중요한 사안을 놓고 하루에도 몇차례씩 입장을 다반사로 바꾸었다. 4일 협상에서도 두 차례의 총무회담을 통해 대략적인 타협이 이뤄졌지만 실무작업에 가면 이내 뒤집어 졌다.
여기에다가 소관상임위인 행정자치위 산하 선거법개정소위 몇몇 의원들의 독선이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한 야당측 초선의원은 자신이 협상전권을 갖고 있다면서 총무회담「무용론」을 제기한뒤 총무간 합의사항을 뒤엎는 오만함까지 보였다. 『한나라당에는 「총재급」초선의원과 「대표급」초선의원이 있다는 데 그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는 한 여당중진의 푸념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잘 말해 주었다. 의원들이 자신의 일정조차도 내다보지 못한채 심야에 의사당에서 대기하고 있는 게 우리국회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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