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일에 실시된 네 곳의 재선·보선에서는 뜻밖에도 야당인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부산과 대구에서 여당이 진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 밖의 지역에서 승리가 확실시된다던 자민련 후보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 사실에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정치에 관하여 오랜 경험이나 넓은 지식이 없는 일반 국민은 이번 선거의 결과를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아직도 지역감정의 골이 깊이 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심화된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지역감정의 담을 헐어버리겠다고 공약을 하고 당선된 대통령이 취임한지 아직 얼마 되지는 않지만,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서는 고향을 묻지 않고 오로지 그 사람의 능력과 덕망만을 문제 삼았어야 하는데, 호남 출신 아니면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없다는 비난의 소리가 차차 높아지게 된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의 정권들이 영남 출신만을 중용하고 호남 출신은 멀리하였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하면, 이번에는 호남 출신의 대통령이 나와서 예전과 꼭 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믿습니다.
대구 달성의 경우에는 여당인 국민회의 후보와 야당인 한나라당 후보가 격돌한 셈인데 여당이 문자 그대로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지역감정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면 그토록 표차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좀 야한 표현을 용서하신다면『전라도 사람 당의 후보를 왜 경상도 사람보고 찍어주라카노』라고 정리할 수도 있겠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아직은 지역감정을 전혀 해소하지 못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경상도 유권자들이 자민련 후보들을,비록 근소한 표차이긴 하지만, 모조리 떨어뜨린 까닭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김대중씨 대통령 만들고 자민련 사람들은 왜 찬밥만 먹느냐고 유권자들은 혹독하게 꾸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민련에는 과거의 민자당, 신한국당, 오늘의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온 대구·경북 출신의 의원들도 여럿 있는데, 말만 공동집권일 뿐, 역할이 전혀 없다고 판단하고 등을 돌린 것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어쨌든 여권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일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여당에 유리한 정계개편이 불가능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리한 개편은 오히려 정계를 더욱 혼란으로 몰고갈 우려가 있다고 풀이합니다. 이번 선거를 지켜보면서, 경제 위기만이 아니라 정치 위기도 멀지 않았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대통령께서 빨리 손을 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정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하나 뿐입니다. 대통령께서 정당을 떠나시는 것입니다. 국가가 위기에 직면하지만 않았다면 정당정치를 고수하시는 일이 당연하다 하겠지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지금이 위기입니다. 비상하고도 대담한 결단이 없이는 이 난국의 타개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께서 국민회의를 떠나시지 않는 한 이 정당의 자생력은 생기기 어렵습니다. 국민회의가 앞으로도 대통령을 낼 수 있는 정당이 되려면 지역정당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호남 이외의 모든 유권자들에게 분명하게 인식을 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회의의 깃발을 들고 대구에서도, 부산에서도 당선이 될 수 있어야 하고, 한나라당의 깃발을 들고 목포나 광주에서도 당선이 가능하게 돼야만 합니다. 정당이 없는 대통령이라면, 모든 국민이 한결같이 지지와 성원을 보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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