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차례 부양책 불구 하향경기 못막아/보유중인 美 국채매각 재정지출 확대땐/전세계 금리상승·대공황 ‘최악 시나리오’3일 일본 금융시장을 강타한 「검은 금요일」의 충격은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가 이날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 및 외화채권의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국채 및 외화채권의 신용등급 하락이 곧 엔화투매와 주식투매, 채권투매로 이어진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경제가 가장 안정된 20개국만이 받고 있는 최상위 신용등급 「Aaa」에서 언제든 떨어질 수 있다는 무디스의 발표는 일본 경제에 대한 신뢰감의 추락으로 직결된 것이다.
그러나 이날 외환·주식·채권시장의 폭락은 일본은행이 2일 발표한 일본 기업들의 경기판단지수(DI)가 94년 8월 이래 가장 나쁜 31로 나타났다는 발표에서 진정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일본 경제가 전혀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ING베어링스의 수석경제분석가인 리차드 제렘은 이날 엔화 폭락사태에 대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것은 일본 경제시스템의 안정성마저 위협하는 징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 경제는 이미 6∼7년전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으며 이제야 이것이 외환시장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용등급을 내린 무디스 관계자 역시 『신용등급 조정은 일본 정부의 정책신뢰도에 대한 불확실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와 자민당이 그동안 내놓은 각종 경기부양책이 극심한 경기침체를 되살리기 힘들다는 판단이 내려졌다는 말이다.
일본 정부는 작년 10월 이후 벌써 5차례나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지난달에는 16조엔이라는 천문학적인 경기부양 패키지와 소득세 감면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 경기는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반전(反轉)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이날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달러=135엔」이 무너지자 오후 2시께 2억달러를 투입하며 엔화폭락을 막았다. 그러나 경기 전망이 계속 불투명하고 정부의 경기부양책마저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한 엔화 하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엔화 하락의 여파는 전세계에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일본의 국채 이자율은 전날보다 0.095%포인트 올랐다. 금리가 오르게 되면 민간투자는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경기회복으로부터 더 멀어진다는 얘기다.
결국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밖에 다른 길이 없는 셈이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가 보유중인 미 재무부채권을 매각한다면 전세계적인 금리상승 도미노 현상이 불가피하다. 1930년대의 대공황이 재현될 것을 우려하는 경제전문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엔화폭락의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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