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 이런 선생님도 다 있네』 이따금 보게되는 TV 드라마에서 들은 대사 한마디에 여러가지 상념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서 선생님이 주었다는 큰 봉투를 받은 주부의 혼자말이다. 봉투에 든 책 갈피에는 자신이 보낸 돈과 함께 「잘 받았습니다. 답례로 책 한 권 보냅니다」는 쪽지가 들어있었다.듣기에 따라 이 말은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선생님들은 다 받는데 왜 이리 유난을 떠느냐는 말 같기도 하고, 세상이 다 그런데 참 훌륭한 선생님도 있다는 찬사로 들리기도 한다. 우리가 특별한 뜻으로 새겨야 할 의미는 후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드라마 방영 전날 교사들이 학부모들을 학교로 불러 돈을 받는 모습이 몰래카메라에 잡혀 TV 뉴스로 보도됐다. 파면이다, 명단공개다 엄포를 놓아도 소용 없다는 고발이다. 그렇지만 드라마가 보여주듯 봉투를 물리치는 교사가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촌지를 거부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화제가 되지 않을 뿐, 우리 교단에 그런 선생님들이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참교육을 추구하는 학부모 단체와 전교조 등의 꾸준한 촌지 안받기운동이 양심적인 대다수 교사들의 참여의욕을 자극해 결실을 맺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리칠 수 없는 봉투를 받았을 때는 그 돈으로 학급문고를 만들기도 하고, 학용품을 사 골고루 나눠주는 선생님도 있다. 그 돈으로 구입한 도서상품권을 학생에게 주는 방식으로 반환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안받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주기이다. 주는 사람이 없으면 문제는 생길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주니 안줄 수도 없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경험 있는 학부모의 대다수가 촌지의 효험이 별로 없었다고 실토한 여론조사도 있다. 교사들도 『요즘 아이들은 눈치가 빨라서 특정학생을 표나게 잘 해줄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도 「인사」를 해야 내 아이가 따돌림을 당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학부모들 때문에 촌지는 근절되지 않는다.
내 아이의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인사가 나쁠 것 없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촌지는 교단의 황폐화를 초래할 뿐 아니라, 학생들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도 극히 해로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학생들 모두에게 큰 해악으로 작용한다. 가령 어느 교사가 촌지를 가져온 학생을 칠판이 잘 보이는 앞자리에 앉게 해주었고, 그 결과인지는 몰라도 그 학생의 성적이 올랐다고 하자. 본인은 물론, 집안이 어려워 촌지를 주지 못하는 학생들도 돈이면 안되는 일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이 선생님에게 야단이라도 맞게 된다면 그 생각은 더욱 굳어질 것이다. 그렇게 학교와 멀어지고 능력 없는 부모가 미워 가정에서도 겉돌게 되는 학생들이 마음 붙일 곳이 어디겠는가. 은연중 그런 금전만능의 가치관에 물든 아이들이 자라 나라의 주역이 된다면 지금 이 혼탁한 세상과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얼마전 가난을 비관한 중학교 여학생들이 집단자살한 사건도 이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끼니를 굶는 적빈(赤貧)을 겪어보지 못한 그들이 등록금을 제 때 내지 못한 것을 수치로 여겨 죽음을 택한 것은 물질이 판치는 교실문화 때문이 아니었을까. 학부모들은 촌지가 내 아이를 잘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망치는 것임을 깨닫고, 바른 몸가짐으로 학생들을 감화시키는 「이런 선생님」들이 많아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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