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할권 다툼은 관료들의 본능에 가깝다. 실익없이 번거로워 보이는 일이면 온갖 핑계를 앞세워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뭔가 잇속이 있겠다 싶으면 자기 소관임을 강조하며 틀어쥐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지난 27일 대통령주재로 12년만에 부활된 무역투자진흥대책회의에서도 관료들의 이런 생리가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외국인투자유치 업무의 보고를 서로 맡겠다며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 간부들이 전날 밤늦게까지 입씨름을 벌였다고 한다. IMF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외국인투자 유치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대통령의 관심이 집중되는 듯하자 관련부처마다 자기 일이라며 관할다툼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재경부는 외국인투자 및 외자도입법의 운용주체임을 들어 투자유치가 자신의 소관업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산자부는 투자유치 실무를 맡게 될 무역공사가 자기부 산하기관이니 계통을 따지자는 입장이다. 외교통상부는 투자유치 유망 200대 기업을 선정, 해외공관별로 전담요원이 발로 뛰게 하겠다며 의욕에 넘친다.
그러나 최근 외국인 투자문의가 하루 50여건씩 들어오고 있지만 전담창구가 정해지지 않아 발만 구르는 실정이다. 투자할 외국인들은 아직 상담할 창구를 찾지 못해 난감해 하고 있는데 공명심에 들뜬 관료들은 김칫국만 마시고 있는 꼴이다.
외국인투자 유치는 민간이 맡아야 한다.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별도의 투자유치 전담기구를 만들어 투자상담부터 공장 설립까지 모든 일을 「원 스톱 서비스」로 처리하게 해야 한다. 정부 조직은 영국 상무부의 대영투자국(IBB)처럼 1개 국(局)이 민간투자 유치기구의 활동을 측면지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유달리 자부심 강한 우리나라 공무원들에게 각국 기업체를 찾아다니며 투자유치를 해오라고 요구해봤자 실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 기껏해야 한두해 업무를 맡아 스쳐갈 관료가 최소 몇년씩 걸리는 유치 사업에 얼마나 열의를 바칠지도 의문이다. 외국의 투자유치관련 전문가들도 부처간 영역주의가 많고 행정규제가 심한 나라에서 관료가 투자 유치를 주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어느 나라나 공무원이 만든 규제를 스스로 풀기는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최근 재경부등 관련부처가 관할다툼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막상 공무원 옷을 벗고 투자유치에 뛰어들라고 하면 과연 몇명이나 나설지 궁금하다.
외국인 투자유치 전담기구의 설립은 매우 시급한 과제다. 필요할 경우 공무원들을 대거 전직시켜서라도 민간이 주도하는 투자유치기구를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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