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투자로 부실 자초/부채비율은 ‘고통지수’/외형보다 실질 챙겨야지난해 9월부터 본격화한 외환위기는 기업의 연쇄부도 금융부실 정부의 무능이 빚어낸 합작품이었다. 이 가운데 대기업들의 방만한 빚더미경영이 위기의 주요 원인중 하나라는데 이론이 없다. 재벌의 빚더미경영은 고성장시대를 통과하면서 뿌리깊은 관행으로 자리잡아왔다. 매출액과 그룹의 지명도를 발판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느냐가 능력의 척도로 받아들여졌다.
차입을 위한 평가를 매출이나 자산규모로 따져온 우리의 금융관행이 이를 부추겼다. 당국은 무정견한 세계화바람을 통해 해외차입의 물꼬를 열었다.
빌린 돈들은 우후죽순처럼 해외법인을 늘리는데 사용되고 당국의 방관아래 너도나도 소나기식 중복 투자에 쏟아부어 졌다.
눈덩이 외채의 기본원인이 된 해외차입의 과정들은 재벌의 무모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산업은행이 분석한 IMF통계를 보면 81∼90년 10년간 국내기업과 은행들이 차입한 외화는 48억5,400만달러. 매년 평균환율을 감안해 환산하면 모두 3조 3,800억원수준이다.
차입액은 94년부터 급증했다. 80년대 10년치보다 많은 6조3,000억원이 94년 한해에 들어왔고 95 96년에는 각각 9조원이상이 차입됐다.
재벌들은 당국의 여신관리규제를 받지않는 해외채권에 특히 매달렸다. 80년대 8,000억원에 그쳤던 해외주식예탁증서(DR)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 사채(BW)등 해외채권발행액은 94년 2조8,000억원 95년 4조9,000억원 96년 8조6,000억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재벌들이 해외차입으로 빌려다 쓴 외채의 규모는 1,000억달러에 달한다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재계관계자들은 『외자도입액은 잘나가는 계열사일수록 많았고 외국금융기관들이 그룹의 실력을 알아주기 시작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막무가내로 들여온 외화들의 쓰임새를 살펴보면 더욱 어처구니 없어진다. 과잉중복으로 말많았던 설비투자와 대부분 실패로 가름난 해외법인 만들기에 사용된 것이다. 설비투자에 들어간 외화들은 자동차 화학 조선등 주력업종들의 과잉투자문제를 빚어냈고 결국 빅딜이나 구조조정으로 교통정리를 강요받는 운명을 맞게됐다.
최근 증권거래소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30대 재벌그룹의 부채는 자기자본의 4.5배 수준. 자기자본보다 빚이 5배 가까이 많다는 얘기다. 그룹별로는 아남그룹과 해태그룹이 각각 3,500% 1,300%를 넘긴 것을 비롯, 한라 한진 한일 현대 두산 한화 효성 신호등 500% 이상인 그룹만해도 10개나 된다.
전문가들은 『현재 진행되는 상호지급보증해소 결합재무제표작성등 재벌정책이 차입경영의 문제를 차단하는 1차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자산매각을 하든 해외자본을 유치하든 부채비율을 줄이도록 가이드라인을 관철하는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매출액보다는 수익, 외형보다는 실질을 중시하는 재계의 풍토가 마련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이재열 기자>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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