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타이타닉’의 1%선/작품성과 흥행에선 경쟁/해고당한 아버지들의 허세 버리는 과정 그려영국영화 「풀 몬티」(Full Monty:몽땅 벗는다는 뜻의 영국속어)는 저예산영화의 대표적인 성공작으로 꼽힐 만하다. 24일 열린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당당히 작품상후보에까지 오른 이 영화의 제작비는 350만달러(약 49억원. 환율 1,400원 적용). 「타이타닉」은 영화사상 최대인 2억8천만달러. 「타이타닉」의 80분의 1 정도 밖에 들이지 않은 이 영화가 당당히 흥행과 작품성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수익성을 따진다면 「풀 몬티」가 훨씬 앞선다. 현재 전세계에서 2억3,000만 달러를 끌어모아 제작비의 66배를 벌어 들인 이 영화에 비해 「타이타닉」은 10억6,000만달러로 3.8배의 수익을 올렸다.
신인감독(피터 카타네오) 신인작가(사이먼 퓨보이)가 일궈낸 기적의 원천은 웃음과 눈물이다. 얼핏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삶을 늘 따라다니는 웃음과 눈물의 양면성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낯익은 배우라고는 「트레인스포팅」의 로버트 카알라일 정도 밖에 없지만 스타부재의 약점을 절묘한 아이디어로 극복한다.
영화는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절망에서 시작된다. 영국 남부 요크셔지방 셰필드의 제철공장에서 해고당한 남자들은 갈 데가 없다. 아내에게 실직 사실을 숨기고 할 수 있는 일이란 우중충한 구직센터에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술을 마시는 것이다. 이들이 벤치에 앉아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는 처량한 모습은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러나 이들이 자존심을 버리고 돈이 있는 곳, 남자스트립쇼 무대로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더 없는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 웃음을 끌어낸다. 싸구려 섹스코미디같은 남성스트립쇼라는 소재는 인물들의 풍성한 캐릭터묘사와 겹쳐지면서 진지함을 얻게 된다. 스트립쇼를 준비하며 배가 나와서, 가슴이 처져, 혹은 그 부분이 작아서 망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내의 사랑 때문에 주저하는 이도 있다. 결국 아내에게 실직을 고백하지만 따뜻한 격려를 들었을 때 남자들은 갈등을 끝내고 진정한 용기를 얻는다.
마지막 스트립쇼는 권위와 자부심과 책임감에 억눌렸던 남성들이 위선을 벗었을 때 아내와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진정한 기쁨를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통쾌하게 일깨운다. 그것은 이 어려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유쾌한 메시지일 수 있다. 허세를 벗고 세상을 대할 때 절망은 기쁨으로 바뀔 수 있다는.<이윤정 기자>이윤정>
◎우리 저예산영화 기획력이 ‘문제’
우리에게도 「풀 몬티」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우리 영화계 형편으로 볼 때 10억원을 넘는 거대제작비의 영화가 거의 불가능한 현실에서 3억∼5억원의 저예산영화는 오히려 유일한 출구나 다름없다.
그러나 저예산영화는 도무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세 친구」「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억수탕」「악어」「바리케이드」등 비교적 알려진 저예산 영화는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저예산」임을 알리려 하지 않는다. 만드는 쪽도 수익성을 기대하지 않고, 관객들 역시 「감독 마음대로 만드는 재미없는 예술영화」 정도로 여긴다. 자유로운 소재로 보다 많은 제작진이 다양한 관객에게 접근할 수 있는 저예산영화의 장점은 영화계에서 전혀 살아나지 않는다. 제작자들은 『관객들은 스타가 나오지 않는 영화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예산영화의 실패는 스타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저예산영화를 단순히 「거액 스타가 나오지 않는 영화」로 생각하는 데서 문제는 출발한다. 저예산영화의 핵심은 그 규모 내에서 최고의 효과를 끌어 낼 수 있는 기획력에 있다. 규모가 큰 영화들과는 애초에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평론가 김정룡씨는 『저예산영화의 실패는 빈약한 드라마구조와 참신하지 못한 기획으로 흥미를 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돈을 적게 들였으니 남기지 않아도 된다」는 안이한 제작방식이 저예산영화를 상업영화와 점점 멀어지게 했다.
적게 들여 많이 남길 수 있는 저예산영화를 위한 상업영화계의 도전이 필요한 때다. 그것은 우리 영화계의 기획력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이윤정 기자>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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