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5일 인권운동 사랑방 대표 서준식씨가 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그해 가을 홍익대에서 열린 제2회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한 제주 4·3사건 기록영화 「레드 헌트」가 이적 표현물이라는 이유였다.그 뒤 인천 전주 제주 군산 등지에서 영화제가 열릴 때마다 이 영화 상영을 둘러싼 신경전이 있었다. 92년 북제주군 다랑쉬굴에서 4·3사건 희생자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됐을 때는 당국이 바로 입구를 콘크리트로 봉쇄해 버렸다.
이 사건을 주제로 한 제주도 출신 작가 현기영씨의 소설 「순이 삼촌」이 78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출간되자 군 정보당국은 작가를 끌어다 모진 고문을 하고 책의 발매를 금지시켰다.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씨가 84년 같은 테마의 소설 「화산도」로 아사히(朝日)신문사가 제정한 문학상(大佛次郞상)을 받았을 때도 출판금지 처분으로 번역판이 나오지 못하다가 88년에야 해금됐다.
4·3사건은 아직 정확한 피해규모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망자가 3만명이라는 설에서 8만명설까지 있다. 94년 제주도 의회의 조사로 확인된 수는 1만4,504명이었다. 그중에는 10세 이하 649명, 60세 이상 673명이 포함됐다. 그 많은 희생자 유가족들은 『억울한 세월을 목놓아 울지도 못한 것이 한으로 굳어졌다』고 말한다. 50년동안 명예회복과 보상을 요구해 온 그들의 피울음에 권력자들은 누구도 귀를 귀울이지 않았다. 거창 양민학살사건이나 광주항쟁 사건은 특별법까지 만들어 명예회복을 시켜 주면서도 유독 이 사건만은 문제삼는 것조차도 불온으로 몰았다.
다행히 새 정권은 4·3사건 진상규명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당측은 지난 20일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이 사건을 재조명하기로 했다. 제주 출신 의원들의 노력으로 4월중 국회특위가 구성될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오는 4월3일은 이 부끄러운 사건의 50주년이다. 떳떳하지 못한 일일수록 빨리 청산하는 것이 역사발전의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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