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민원에 행정 ‘걸림돌’ 일쑤지방자치단체를 감시,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가 업무의 「걸림돌」로 전락하고 있다. 의원들이 의정활동을 빙자해 자신의 이권을 챙기거나 지역 주민의 표를 의식해 생떼를 쓰는 일이 잦고 정작 조례 제정, 예산 심사 등을 처리해야 하는 회기 때는 의무를 게을리 한다. 이런 일들은 광역의회보다 기초의회에서 더 허다하다.
최근에는 임기 만기를 앞두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잇따라 빈축을 사고 있다. 서울의 한 구의회는 최근 사무국 업무추진비 3,000만원을 들여 의원들의 이름을 새긴 기념비석을 의회 앞에 건립키로 했다가 취소하는 소동을 벌였다. 지역신문에 비석 건립에 대한 비난성 기사가 실리자 사업 추진을 아예 백지화한 것이다.
임기중에 1회 갈 수 있는 해외 연수. 아직 못간 의원들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는 아랑곳없이 연수 일정을 잡기에 바쁘다.
서울 모 구청 기획예산담당관실 관계자의 말. 『솔직히 요즘같은 IMF 시대에 공무원들이 앞산에라도 놀러가자고 말이나 꺼낼 수 있습니까. 애초에 잡힌 비업무성 예산도 보류하는 마당인데…. 아직도 의원님들은 분위기를 못 잡아요. 임기 끝나기 전에 해외연수 못간 의원들 외유해야 한다고 연말 회기 때 예산을 편성하더라구요. 한심하다는 소리가 안 나올 수 없죠』
관내 인·허가와 관련이 많은 건축, 위생, 주택 등 자치단체의 관련 부서에는 사업 공고나 단속 전에 으레 지방의원들의 민원이 따른다. 한 기초자치단체 건축과 관계자는 『공사를 발주하면 공모 전에 의원을 통해 「잘 봐달라」는 연락이 온다. 의회에 꼬투리를 잡혔다가는 나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외면하기가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서울 송파구청에서는 구의회 도시건설위원장이 발주 공사당사자로 선정됐다가 문제가 되자 사임하는 일도 있었다.
촌지 향응 등 대가를 바라고 단체장이 하는 일에 제동을 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서울 한 구청 관계자는 『사업을 벌이기 전에 담당국장, 과장 등이 미리 「인사」를 다녀야 하는 의원들이 있다. 이를 생략하면 십중팔구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한번 잘 모신 뒤에는 태도가 달라진다. 소신을 갖고 있다면 아예 향응을 받지도 않고, 받았다고 의견을 바꾸지도 않을 것이다』
지역구에서 지방의원들이 선심성 사업을 놓고 다투느라 행정이 차질을 빚는 일도 많다. 지난해 한 기초단체는 주민들을 위한 복지관을 짓는 일을 추진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애초에 복지관을 지을 것을 청원한 의원과 같은 지역구의 다른 의원이 결사 반대를 하고 나선 것. 주민 복지를 증진시켰다는 공이 라이벌에게 돌아갈 것을 우려해서였다. 복지관은 결국 1년여를 끈 지루한 힘겨루기 끝에 무위로 돌아갔다.<김경화 기자>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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