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웅주의자나 악마주의자가 아니라 리얼리스트일뿐이다』(이인화), 『나는 사상가나 도덕가가 아니라 자생적(自生的) 자유주의자이다』(마광수). 이인화(32·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와 마광수(47·연세대 〃강사). 문단의 이단으로 불리는 두 작가가 통념에 저항하는 작품을 다시 내놓았다. 「박정희신드롬」의 주역처럼 불리는 이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애를 다룬 장편 「인간의 길」(살림 발행) 1부 3권을 완간했다. 13일 복권된 마씨는 새 장편 「자궁 속으로」(사회평론 발행)를 발표했다.<하종오 기자> ◎이인화/‘인간의 길’ 1부 3권 완간/“이데올로기가 아닌 시대와 인간의 면에서 박정희를 보려한다” 하종오>
이씨의 「인간의 길」1부는 1871년부터 1951년까지 근대 80년간 주인공 허정훈(박정희)집안 3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근 나온 3권은 46년10월 대구폭동에서 시작한다. 삶이 죽음과 똑같이 허망한 시대, 허정훈은 「어떤 폭력과 박해에도 절명(絶命)을 피해 버러지같이 애걸해서라도 살아 남아 마지막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 진짜 인간」이라는 철학을 키워나간다. 「천 개의 산 만 개의 골짜기를 걸을지라도 반드시 이 혁명을 이루고야 말련다」는 허정훈과 그에 대립하는 인물군상의 행적은 소설적 흥미를 다분히 갖추고 있다.
「박정희」를 「미화」했다 해서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이씨가 거듭 밝히는 집필의도는 이렇다. 『나는 평범한 한 개인이 파시스트가 되어간 과정을 그리고 싶다. 우리는 일제 36년과 해방후 25년, 모두 61년간 파시스트 치하에 살았으면서도 그에 대한 인간학적인 탐구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하고 싶을뿐이다』. 최근 우리 소설은 지나치게 개인의 내면가치 추구로만 나아갔고 이것은 그가 보기에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인들이 패전 이후 저마다 술통 속에 처박힌 디오게네스가 되었던 것과 같이 사회의 해체로 나아가는 길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박정희를 인격적으로 미화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은 작가로서 수긍한다. 그러나 나는 일제와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스스로 자기 안의 악마를 불러내었던 박정희가 어떻게 그 과정을 밟았는가 하는 것을 그대로 그림으로써 오늘 우리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으려 할뿐』이라고 해명했다. 『체제와 이데올로기라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시대와 인간이라는 면에서 박정희를 보려 한다』는 그는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보는 박정희와 인문학의 관점에서 보는 그는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길」완성을 필생의 작업이라고 말해왔던 이씨는 앞으로 5년 내에 2, 3부까지 10권 분량으로 완간할 작정이라고 밝혔다. 2부는 4·19이후 63년까지, 3부는 77∼79년을 다룬다.
◎마광수/필화다룬 ‘자궁 속으로’ 출간/“대리배설 쾌감제공이 내문학의 궁극적 목적 상상력억압은 시대착오”
마광수씨는 복권에 대해 『뜻밖』이라며 『표현의 자유, 문화 민주화라는 면에서는 용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복직이 이제 그에게 남은 과제다.
다섯번째 장편소설 「자궁 속으로」에서 그는 필화사건을 다루고 있다.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영화로 만들려 했다가 중단한 체험, 전위예술가 친구들과 벌였던 퍼포먼스, 「즐거운 사라」 출간후 구속된 경험등을 소설 속 주인공과 4명의 여자가 벌이는 사랑이라는 허구속에 섞어놓았다. 조금 순화된듯 하지만 에로티시즘 취향은 여전하다. 마지막 부분은 주인공이 감방에 갇히는 장면이다. 자신의 몸 하나를 간신히 포용할 감방이 처음엔 꼭 자궁 속처럼 느껴졌지만 「너무나 춥고 을씨년스러운 자궁」이라며 그 곳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마씨는 『나의 소설관은 다원주의이다. 요즘 들어 「몸의 시대」니 「육체주의」니 하는 말이 일반화하고 성에 대한 담론서가 쏟아지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남들보다 10년 정도 앞서 했을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작가는 허구적 창조를 통해 가슴 속의 울화를 대리배설하는 쾌감만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며 『독자에게 사상적 감화를 준다거나 도덕가들의 칭찬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작가는 사이비』라고 주장했다. 92년 10월 「즐거운 사라」를 내고 전격구속돼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 상고를 거치는 5년반 세월동안 그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국내·국외작품에 대한 가치기준이 다른 문화적 이중주의와 쇄국주의, 그리고 도덕을 빙자한 공권력의 문화탄압을 당연시하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고집하면서 어찌 사회발전과 경제회생을 바랄 수 있나. 벤처기업 운운 하지만 상상력 없이는 되는 일이 아니다』. 그는 연세대 국문과에서 「희곡론」을 시간강사 자격으로 가르치고 있다. 자신을 지금은 「전업작가」로 부른 그는 구속 이후 소설 시집 문학이론서등 7권의 책을 냈다. 그간 쓴 에세이도 곧 묶어 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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