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변호사다. 5만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정치와 경제가 함께 어우러지는 싸움터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활동영역은 소송관련 업무 외에도 정치여론조사 및 정책입안 등 정치자문역에서부터 외국투자를 알선하는 투자자문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이를데 없다. 좀 심하게 말하면 변호사들끼리 「차치고 포떼면서」 워싱턴을 주무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몇 년 전부터 워싱턴의 변호사들에게 한국이 주요 고객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의 무역거래가 급격히 늘면서 상사(商事)및 특허관련 분쟁이 생겨났고 또 정부차원에서도 통상마찰 등이 발생하면서 이들에게 한국이 새로운 시장으로 부각된 것이다.
워싱턴의 3대 로펌 중 한 곳에서 일하는 한 한국전문 변호사는 최근 겪었던 일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미국 기업으로부터 피소된 한국 기업을 변호하게 됐다. 판사의 입회아래 상대인 원고측 변호사와 증거조사절차에 합의하고 한국 기업측에 주주총회 및 이사회 기록을 요청했다. 그런데 대답은 「없다」는 것이었다. 수십억 달러가 달린 사업을 추진했는데 아무런 공식기록이 없다는 것을 상대측이, 나아가 판사가 믿겠느냐. 한국 기업의 관행상 총수가 그런 결정을 내렸을게 뻔한데 상대방에서 총수를 증인으로 부를 수 있다고 하니 총수를 보호하는데 급급했다. 판사에게도 뭔가 불리한 것을 감추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었고 재판결과가 좋았을 리 없다』
한국 기업을 고객으로 받아 본 경험이 있는 이곳 변호사들은 한결같이 『한국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한국의 기업들이 너무 폐쇄적이기도 하지만 모든게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기업의 의사결정이 어떤 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또 그것이 실천에 옮겨지는데도 어떤 절차를 밟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기업이 어딘지 모르게 음모적 냄새를 풍기는 정체모를 집단처럼 인상지워져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곳의 변호사들이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선뜻 권하지 못하는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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