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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첫 시집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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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첫 시집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

입력
1998.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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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하는 젊은정신의 고통스런 편력「어제는/나보다 더 보폭이 넓은 영혼을/따라다니다 꿈을 깼다/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그 거리를/나는 눈물로 따라갔지만/어느새 홀로 빈 들에 서고 말았다」(「세한도」부분)

젊은 시인 박현수(32)씨의 첫 시집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청년정신 발행)는 그가 자신보다 「보폭이 더 넓은 영혼」을 추구한 정신의 기록이다. 9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세한도」가 당선돼 등단한 그의 첫 시집이다.

「누군 핏속에서/푸르른 혈죽(血竹)을 피웠다는 데/나는/내 핏속에서 무엇을 피워낼 수 있을까」라고 희구하면서도 「길은 흘러내린다/꿈꾸는 것은 모두/스스로의 무게로 흘러내리고 만다」(「내소사」부분)고 회의하는 젊은 정신의 편력이 시집에 실린 시들에 가득하다. 그의 고통스런 시의식은 요즘 우리 시단에는 흔치 않은 미덕이자 한줄기 희망으로도 보인다.

「결국 구차함은 들키고 마는 것이다/번개탄 연기가 흐르는 골목/반쯤 묻힌 창 아래로/동화처럼 가난한 가장의 새벽 식사가 들킨다//단 한 번의 눈길에/모든 것을 약탈당하는 단칸방의 조감을/그는 얼마나 견디어 온 걸까」(「우리 가난한 조마구네 나라엔」) 같은 구절에서는 개인의 가난을 넘어, 우리 시대의 가난을 읽어보게 하는 선명한 이미지의 힘도 그는 가지고 있다.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젊음에게 그의 어머니는 「청량리 복권 판매소에서/당황하여 만류하는 내 손을 넘어/굳이 복권을 두 장 사,/2억이면 등록금 마구코 용돈 좀 쓰랴?」면서 「주름으로 내려앉은 눈누덩에 금이 간 미소」를 지으며 쥐어준다. 그는 이런 날이 「하루에도 몇 번씩 출세하고 싶은 날」이다.

그러나 그는 그 출세에 쉬이 마음을 내맡기지는 않으며 간난 속에서도 서정을 이끌어내는 시인의 마음을 누구보다 굳게 가지려 한다. 「마음에 쉬이/우상을 세우는 사람은/그만큼/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는 자」이며 「거울처럼 비춰지는 것에마다/몸을 맡기면/자신은 유산되고 마는 것」(「깃발의 노래」부분)임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박씨는 세종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등단 이후 자신과 형제들의 글모음 「형제산고」를 내기도 했다. 이번 시집출간 사연도 뭉클하다. 무슨무슨 동인집단 등으로 갈라진 시단에서 신춘문예 출신은 자칫 미아가 되기 쉽다. 이런 사정을 아는 유용주 이승하 함민복 장석남 이윤학 박형준씨등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시인들이 후배들의 첫 시집 출간을 돕기로 뜻을 모으자 시인 이종록씨가 출판사 청년정신을 통해 시선집을 내기로 했다. 박씨의 시집은 이 선집의 첫 결실이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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