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政經·사회상 기록 ‘백과사전식 日記’ 햇빛/규장각서 사장 210년만에/조선 영·정조시대 생활상서/서양문물·철학 등 세세히 서술18세기 한 유학자의 「백과사전적 일기」가 최근 서울대 규장각에서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대 규장각은 영(英)·정(正)조때 선비였던 통원(通園) 유만주(兪晩柱·1755∼1788)가 21세때부터 34세로 요절하기전까지 13년동안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쓴 144권의 「흠영(欽英)」일기를 발견, 최근 3,360쪽짜리 총 6권을 23일 영인본으로 발간했다. 「흠영」은 영웅을 흠모한다는 뜻으로 통원의 서재 이름을 딴 것이다. 「서유견문」의 저자인 유길준(兪吉濬)의 4대조인 통원은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평생 유학과 당시 싹트기 시작한 실학을 연구한 재야학자로 「흠영」은 그의 필생의 역작이자 유일한 저작이다. 「흠영」은 통원이 자신의 생각은 물론 집안의 대소사, 당대의 정치와 사회, 철학과 예술, 해외의 사정은 물론 고금(古今)의 인물까지 기록한 것으로 당시 사회전반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통원이 6년째 일기에서 『영웅의 움직임으로부터 풀벌레의 생성과정, 사당에서 제사지낼 때의 제수, 민간요법 등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을 있는 그대로 적었다』고 술회, 「흠영」을 통해 역사를 남기려 한 저자의 의도를 분명히 밝혔다.
통원은 「흠영」에서 『애초 60년간, 1,000권을 계획했다』고 밝혔지만 요절하는 바람에 대(大) 작업은 중단되고 말았다.
해제를 맡은 서울대 박희병(朴熙秉·국문학) 교수는 『「흠영」은 동서고금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일기 형식의 백과전서』라며 『어느 해 어느 달 서울의 쌀값이 얼마였고 집을 사고 팔때 어떻게 흥정이 이뤄졌는가 등 당시 생활상은 물론 서양문물의 장단점, 양반계급의 몰락에 대한 예감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역사자료가 들어있다』고 말했다.<윤순환 기자>윤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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