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출장가서 내의를 세탁하다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세탁기로 빨아 탈수·건조하는 과정을 몇번 거쳤더니 입을 수 없을 정도로 줄어버렸다. 원인은 국산내의가 올이 고운 순면(純綿)으로 만들어져 감촉은 부드러우나 기계세탁에 약하기 때문이었다. 외국에서 파는 내의는 섬유 올이 굵거나 합성섬유를 약간 섞어 천이 질기게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해외동포들이 모국의 친척들에게 면내의를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국내서는 순면이 아닌 러닝셔츠나 팬티등을 구하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땀을 흡수하는 능력이 떨어지므로 합성섬유를 섞지 않는다고 말한다. 신사복도 사정은 비슷하다. 웬만한 백화점의 신사복 코너에 가서 혼방제품을 찾으면 『우리 가게는 값싼 제품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면박 당하기 쉽다. 반면 이탈리아나 영국 등지에서는 고급상점이 아니고는 100% 울 제품을 찾기 어렵고 순모 제품은 값도 매우 비싸다. 소모방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서 생산된 신사복지는 순모가 1만4,900㎞(1㎞는 신사복 400벌 분량), 폴리에스테르 60%와 모 40%를 섞은 혼방이 1만2,337㎞로 집계됐다. 10년전만 해도 혼방이 순모보다 3배나 많이 생산됐는데 93년을 고비로 생산비중이 역전됐다. 소득이 올라 고급품을 찾는 소비패턴의 변화는 이해한다. 그러나 순모나 순면을 고집하는 것은 일종의 자원낭비다. 내의를 기계세탁하는 독신자들이 많아진 세태인데 햇볕에 말려야 천이 상하지 않는 순면내의만 시판하는 것은 무리다. 따뜻하고 촉감이 좋지만 닳기쉬운 순모 옷을 걸쳐야만 신사일까. 업계는 소비자들이 혼방을 잘 찾지 않는다고 주장하나, 값비싼 순면·순모제품에 주력하려는 장삿속 때문에 소비자들의 선택을 봉쇄하는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는 원면·원모를 100% 해외수입에 의존한다. 지난해 원면은 6억달러, 순모 복지도 9,000만달러 이상 수입됐다. 꼭 순모·순면을 입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은연중에 굳어 버린 생활속의 과소비가 적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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