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재경위는 최근 변호사·회계사·세무사등 고소득 전문직사업자를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에 포함시키려는 세법개정안을 계류시켜 사실상 폐기했다. 정부는 이번 세법개정안을 제출하면서 공평과세 실현과 IMF체제에 따른 세수보충 차원임을 분명히 밝혔으나, 국회가 개정안을 폐기시켜 변호사·회계사 등의 부가세 면제 혜택을 유지시켜준 것이다.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다. 「유리지갑」인 봉급생활자에 비해 변호사·회계사등의 세금 부담이 적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IMF상황을 맞아 많은 기업들이 쓰러지고 근로자들은 무더기 해고를 감수하고 있다. 반면 변호사·회계사들은 기업정리니, 퇴직금 소송이니 하며 오히려 수입을 늘릴 기회가 더 많아진 셈이다.
유럽연합(EU) 국가들도 대부분 법무·회계서비스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물리고 있다. 그런데도 국회가 고소득 전문직의 특혜 유지에 맞장구를 치다니, 아무리 변호사출신 국회의원이 많다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국회측 논리는 옹색하기 짝이 없다. 변호사 수임료에 대한 부가세는 국민들에게 부담이 전가될 우려가 있고 500억원 상당의 세수증대 효과에 비해 징세비용이 적지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세전문가들은 부가세 과세로 세원이 드러나는 것을 꺼린 전문직들의 집단로비에 국회가 힘없이 무너진 결과일 뿐이라고 단정한다. 전문직에 대한 부가세 과세시도가 이미 여러 차례 같은 이유로 좌절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부가세 면세사업자 축소는 IMF의 요구사항이다. 조만간 IMF와 협상을 통해 고금리를 시정하려고 준비중인 정부가 곤혹스런 입장에 빠질 것이 뻔하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개혁의지 후퇴 조짐으로 지적하는 사항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재벌의 구조조정 지연, 은행의 협조융자, 국회의 민생법안 처리 기피가 그렇다. 그런데 국민들의 눈이 북풍(北風) 파문에 쏠린 틈을 타 국회가 또 트집잡힐 일을 벌인 셈이니 어이가 없다.
IMF한파는 아직 시작의 시작도 아니다. 앞으로 실업·도산·물가대란의 파도가 갈수록 거셀 것이다. 이런 판국에 힘있는 집단들은 저마다 손톱만큼도 양보없이 자기몫 챙기기에 혈안이 되고 있으니, 이제 누구더러 어떤 명분으로 고통분담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국회의원들이 진정 대의사(代議士)임을 자칭한다면 형평과세의 대의(大義)를 외면해선 안된다. 전문직 부가세 백지화 결정은 즉각 철회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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