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언론은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을 2개월이 넘도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추문이 터져 나온 지난 1월 이후, 5∼6명의 여인들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권력과 섹스」라는 흥미진진한 화제를 이끌어 오고 있다.그러나 한국언론에서는 이 스캔들에 막 불이 붙는 듯 하다가 조기진화된 느낌이다. 자제의 분위기는 크게 세 갈래로 왔다. 하나는 미국 여론조사 결과의 반영이었다.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의 환멸이 정점에 이른 듯 했을 때도 「클린턴이 국정을 잘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사생활은 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견해가 단연 우세하자 그의 정치적 몰락을 저울질할 흥미가 줄었다.
다른 두 가지는 세계질서의 큰 몫을 책임 진 미국 대통령이 섹스 스캔들 따위로 흔들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과, 서구세계는 과거부터 정치지도자의 여자문제는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로 이해해 왔는데 우리가 떠드는 것은 촌스런 짓이라는 관점이었다. 또한 관련된 여인들 중에는 거짓 증언으로 자신의 유명도를 높인 후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경우도 있어 관심이 줄어들만 했다.
그러나 미국언론은 여전히 이 스캔들에 집착하고 있다. 3월23일자 「타임」 「뉴스위크」는 6∼7쪽씩을 할애한 특집에서 이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혹시 냉전체제후의 평화로운 시기를 맞은 미국언론이 대통령 스캔들을 빙자하여 황색화·선정주의화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과거에는 너그럽게 불문에 부쳤던 대통령의 여자문제가 새삼 큰 문제처럼 돼버린데 대한 답은 미국사회의 의식변화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미국인과 미국언론은 1960∼70년대를 통해 남녀동등권을 확보하면서 지도자에 대해서도 엄격한 눈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아메리칸대학의 앨런 릭트맨 교수는 『미국인은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신뢰할 수 있는 인격」을 지도자의 필요조건으로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박래부 논설위원>박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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